아일랜드의 "식초 언덕"과 우리의 "우금티 언덕"
HD역사스페셜 60회 – ‘동학군 수괴’ 유골, 왜 일본에서 발견됐나 (2006.9.1.방송)
이 시는 제가 시집으로 출판하고 싶은
"Dicit Historia(역사는 말한다)"에 포함된 것입니다.
무수한 우주인들 중에서 지구인으로서,
조선인으로서(일본어로 조센진으로서),
이순신 장군께서 말씀하신 호남인으로서,
그리고 전라도인 (영어식으로 Jeolladian, 절라디언으로서),
좀 쌩뚱맞게도, 역사적 문화적 동포의식을 느끼는 아일랜드인들 중에,
제가 매우 좋아하는 시인 Seamus Heaney 선생님의 작품들 중,
위에서 언급한 모든 "인"으로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Reqiem for the Croppies"입니다.
이 작품과 저와의 인연/사연에 대해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길게 주절주절 궁시렁궁시렁 글을 써보겠습니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인 소네트의 형식을 사용하셨다"는
(engaging with the traditional sonnet form in a modern way)
Seamus Heaney 선생님의 이 작품을
(그당시 비록 번역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한국어 번역판이었지만),
처음으로 만난 것은 꽤 오래전 (대략 26년 전) 일입니다.
선생님께 바치는 일종의 오마쥬로서 (2018년 늦가을?)
저 자신으로 하여금 "Requiem for the Santus"를 쓰게 마음 먹게 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며, 또한, 나중에 계속해서 소네트 형식을 살짝 빌려
"Dicit Historia(역사는 말한다)"의 시들을 쓰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기에,
저에겐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훨씬 이전에
이 시의 본바탕이라고 할만한 시를 한국어로 쓴 적도 있는데,
그것도 따로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척 보면 아시겠지만, 번역은 제가 직접했습니다.
번역의 정확성을 떠나, 얼마나 원문에 진실된지는
읽어보시는 분들께서 판단하실 몫이고,
아무튼 저는
제 마음 끌리는 대로
제 영혼 꼴리는 대로 번역했습니다.
오래전, 처음 이 작품의 한글판을 읽었을 때도 눈시울이 붉어졌고,
나중에, 비록 오래전이지만, 제가 직접 번역할 때도 눈물을 흘렸고,
저의 "Requiem for the Sanctus"를 쓸 때도 그렇게 썼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로 그 "인"들 중에 특히
자랑스러운 "절라디언"으로서...
셰이머스 히니 선생님께서 사용하신
Rhyme Scheme은 ABAB, CDCD, EFE, FEF입니다.
물론 Thrown, Cannon, Coffin이 완벽한 Rhyme은 아니지만...
셰이머스 히니 선생님께서 직접 읽어주시는 음성도 있지만,
아래에 Margaret Miranda라는 분께서 읽어주시는
그 목소리와 톤과 속도도 맘에 들어 함께 올립니다.
본인이 사과와 함께 인정하는 것처럼,
시보다 오히려 도입부의 소개가 더 길긴 하지만,
개인적인 소감과 다른 이야기도 재미있어서..
- Seamus Heaney
The pockets of our great coats full of barley...
No kitchens on the run, no striking camp...
We moved quick and sudden in our own country.
The priest lay behind ditches with the tramp.
A people hardly marching... on the hike...
We found new tactics happening each day:
We'd cut through reins and rider with the pike
And stampede cattle into infantry,
Then retreat through hedges where cavalry must be thrown.
Until... on Vinegar Hill... the final conclave.
Terraced thousands died, shaking scythes at cannon.
The hillside blushed, soaked in our broken wave.
They buried us without shroud or coffin
And in August... the barley grew up out of our grave.
"There is nothing surer than that Irishmen
of every denomination must stand or fall together."
- William Orr, 1797
- 셰이머스 히니
큼지막한 우리의 외투주머니에는 보리를 가득 채우고...
쫒기는 중이라 취사도 없이, 숙영지를 거둘 일도 없이...
우리들의 고향땅에서 우린 민첩하고 급작스레 움직였다.
시궁창들 뒤쪽으로는 사제와 부랑자가 함께 드러누웠다.
행군하는 일이라고는 거의 없이... 능선을 타고서
빠르게 이동하며... 한 무리 양민이었던 우린 매일 펼쳐지는
새로운 전술들을 보았다. 창으로 말고삐를 통과해
기마병을 찔렀고, 보병대열들 속으로 소떼를 내몰곤 했으며,
그런 다음에, 산울타리들을 헤쳐가며 퇴각을 하고 나면, 아니나 다를까,
추격해오던 기마병들이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던 식초 언덕... 그 최후의
포위망에서, 계단 모양으로 수천이 죽었다, 대포에 맞서 낫을 휘두르며.
언덕등성이가 얼굴을 붉혔다, 우리의 부서진 파도에 흠뻑 젖어.
그들은 우리를 묻었다, 수의나 관도 없이,
그리고 8월이 되자... 우리들의 무덤 밖으로는 보리가 자라났다.
"모든 계파의 아일랜드인들이 함께 서거나
아니면 함께 쓰러져야만 한다는 것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
- 윌리엄 오르, 1797년
https://www.youtube.com/watch?v=iMZkMm3givE
https://www.youtube.com/watch?v=IqJ4TAwONQ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