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lechte Zeit für Lyrik" - Brecht
* 커버 이미지: Bertolt Brecht. Photo: Bundesarchiv, Bild 183-W0409-300 / Kolbe, Jörg /
CC BY-SA 3.0 DE, CC BY-SA 3.0 DE, via Wikimedia Commons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너무나도 유명한 시
Schlechte Zeit für Lyrik(서정시를 쓰기엔 좋지 않은 시대) 는
제가 시집으로 출판하고 싶은
"Dicit Historia(역사는 말한다)"의 도입부에 포함시키고 싶은 작품입니다.
* 목 마른 넘이 우물을 판다고,
번역은 그냥 제 맘대로 제가 다시 해봤습니다
굳이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이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워낙 유명한 시라서, 따로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번역에 있어서 말씀드릴 부분은,
1> 일반적으로 이 작품의 제목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로 번역되어있는데,
저는 "schwer"나 "schwierig"의 "힘든"이 아니라
"schlecht"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살려 "나쁜" 으로 번역
하려다가, 아무래도 "서정시를 쓰기엔 좋지 않은 시대"가
어감이 더 좋은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에서 그렇게 제목을 붙여봤습니다.
2> In meinem Lied ein Reim
Käme mir fast vor wie Übermut.
이 부분에서도,
"내가 나의 노래(시)를 쓸 때,
만약 하나의 운율이라도 맞춘다면,
그것이 나의 시 안에서 거의 거만함처럼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aussehen이 아니라 vorkommen을 사용한 점을 고려해서)"라는
그런 의미로 번역을 했습니다.
"In my poem a rhyme
Would flow like a stinky stream of slime."
"나의 시 안에서 하나의 운율은
구린내가 나는 점액의 시냇물처럼 흐를 것이다."
시냇물도 흐르듯, 운율도 부드럽게 흐르리(flow)
흐르는 똥물처럼~~~~~
저도 그냥 생각이 나서 영어로 끄적여봤습니다^^
3> Krüppel이란 단어도
전혀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를 준수하지 않고
Personal Cockiness(개인적 건방짐주의? 개인적 꼴림주의?)에 입각해
글자 그대로, 제 맘대로, 그냥 뭐 꼴린대로 번역했다는 말씀입니다.
handicapped, impaired, physically challenged, disabled,
with special needs, deformed, crippled....
"아" 다르고 "어" 다른 건 우리말뿐이 아니기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Brecht 선생께서 의도적으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에서 gekrümmt라는 단어를 쓰십니다^^
4> Doch mit Recht 역시,
"으레", "당연히"로 간단히 해석해도 되지만,
브레히트가 굳이 행갈이를 해서
부연 설명처럼 첨가했다는 점을 고려해,
"물론 정당하게" 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물론 틀린 말도 아니다" 이렇게 의역했습니다.
* 브레히트의 사진은, 개인적으로,
시가를 물고 있는 젊은 브레히트의 모습이 너무 좋아서,
"서정시를 쓰기엔 좋지 않은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일부러 저 사진을 골랐습니다.
망상에 가까운 상상이지만, Brecht 선생과 함께 마주 앉아
맞시가 한 대 피워보는 순간을 그려봅니다.
- Bertolt Brecht
Ich weiß doch: nur der Glückliche
Ist beliebt. Seine Stimme
Hört man gern. Sein Gesicht ist schön.
Der verkrüppelte Baum im Hof
Zeigt auf den schlechten Boden, aber
Die Vorübergehenden schimpfen ihn einen Krüppel
Doch mit Recht.
Die grünen Boote und die lustigen Segel des Sundes
Sehe ich nicht. Von allem
Sehe ich nur der Fischer rissiges Garnnetz.
Warum rede ich nur davon
Daß die vierzigjährige Häuslerin gekrümmt geht?
Die Brüste der Mädchen
Sind warm wie ehedem.
In meinem Lied ein Reim
Käme mir fast vor wie Übermut.
In mir streiten sich
Die Begeisterung über den blühenden Apfelbaum
Und das Entsetzen über die Reden des Anstreichers.
Aber nur das zweite
Drängt mich zum Schreibtisch.
In den finsteren Zeiten
Wird da auch gesungen werden?
Da wird auch gesungen werden.
Von den finsteren Zeiten.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도 물론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그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은 기분 좋아하며, 그의 얼굴은 아름답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는
그 땅의 토양이 나쁘다는 걸 가리킨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나무를 병신 같다고 욕한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다.
해변의 푸르른 보트들과 유쾌한 돛단배들을
나는 보지 못한다. 무엇보다
내게 보이는 것은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다.
나는 왜 다만 40대인 소작인의 아내가
등을 구부린 채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마찬가지로 따스한데.
나의 노래 속의 하나의 운율,
그건 내게는 거의 오만함처럼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내 안에서는, 꽃 피어나는 사과나무에 대한 영혼의 감동과
그 칠쟁이(엉터리 화가/히틀러)가 하는 발언에 대한 경악이
서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오직 그 두 번째 것이
(글을 쓰기 위한) 책상으로 나를 몰아가는 것이다.
암흑의 시대들 안에서도
또한 노래는 과연 불러지게 될 것인가?
그때에도 마찬가지 노래는 불러지리라.
암흑의 시대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