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아닌 이것을, 거피취차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6 / 덕경편 38장(6/6)

by 신아연


제가 2016년에 낸 『내 안에 개있다』에는 '저것이 아닌 이것을 위한 인문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38장 마지막 구절, '거피취차(去彼取此)'에서 따온 거지요. 노자가 보호하사 그 책이 그해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어 제게 얼마간의 목돈을 쥐어 주었습니다. 돈이 너무나 없어서 참으로 막막하던 때, 숨통을 틔운 일이었지요.


내_안에_개있다.png



거피취차는 도덕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어입니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무슨 뜻입니까. 소유보다 존재를, 이상보다 일상을, 지식보다 지성을, 예보다 덕을, 꽃보다 열매를, 외면보다 내면을, 유위가 아닌 무위를, 얄팍함보다 두터움을, 마음과 의지보다 배와 뼈(3장; 등따숩고 배부른)를 택한다는 의미지요. 한 마디로 '저것보다 이것'입니다.


'저것'은 멀리 있습니다. 힘겹게 도달해야 할 목표입니다. 인위적 제도적 문화적 설정입니다. 자연스런 본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름이 아닌 틀림입니다. 낙오자와 패배자를 이미 품고 있습니다. 경쟁력이 아닌 경쟁심을 부채질합니다. 1등만 살맛납니다. 아니, 1등도 지칩니다. 불안합니다. 너남없이 고단합니다.


'이것'은 지금 여기를 살게 합니다. 일상이 소중합니다. 이상과 목표, 저 높은 곳이 아닌 내쪽, 이쪽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본성대로 살게 합니다. 개는 개, 고양이는 고양이가 되면 그만입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름입니다.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나답게, 내 쪼대로 살면 그만입니다. 생명력과 경쟁력있는 인생입니다. 이 말이 차라리 '이상'으로 들린다고요? 그만큼 우리가 성취적 유교 문화와 쟁취적 서양 교육에 물들어 있다는 의미겠지요.



그러므로


성숙한 사람은 중후함에 머무르지

얄팍한 데 거하지 않는다.

열매를 택하지

꽃을 주목하지 않는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어제 독자 한 분이 저를 지식인이라고 추켜주는 거에요. 아는 게 많다고. 저를 과분하게 칭찬하신 거죠. 그런데 실상은 전혀, 결코, 절대 아니죠.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빼곤. 저는 그저 글쟁이일 뿐이죠. 우리 독자 중에는 엄청나게 뭘 많이 아는 분이 계셔요. 네이버가 울고 갈. 그분은 간파하고 계실테죠. 무식해서 용감한 저의 실체를.


지식인은 요즘말로 하면 논객이고 옛말로 하면 소피스트들이죠. 지식장사꾼이란 말입니다. 꽃에만 관심있는, 이분법에 매인, 잡다하게 아는 건 많은데 인성은 별로인, 중후한 덕과는 거리가 먼 얄팍한 지혜로 포장된, 입만 살아있는.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는. 당장 몇 사람 떠오르시죠? 모르면 몰랐을까, 지식인은 되고 싶지 않네요.


덕있는 사람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냥' 사는 사람입니다. 생존 자체가 목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38장 마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38 장


높은 덕의 사람은

자기의 덕을 의식하지 않기에

정말로 덕이 있는 사람이다.


낮은 덕의 사람은

덕을 잃으려 하지 않기에

실상은 덕이 없는 사람이다.


덕이 높은 사람은

한다는 의식이 없이 하기 때문에

별로 할 일이 없다.


덕이 낮은 사람은

의도적으로 하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 많다.


훌륭한 인(仁)의 사람은 일을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의(義)의 사람은 일을 하면서

무엇을 위한다는 이유가 많다.

높은 예(禮)의 사람은 일을 하되

따라오지 않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억지로 당긴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뒤에 덕이 생기고

덕을 잃은 뒤에 인이 생기며

인을 잃은 뒤에 의가 생기고

의를 잃은 뒤에 예가 생긴다.


예란 속마음의 껍데기요

어지러움의 우두머리다.

이미 갖고 있는 인식은

꾸며진 도이며 어리석음의 단초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람은 중후함에 머무르지

얄팍한 데 거하지 않는다.

열매를 택하지

꽃을 주목하지 않는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예는 속마음의 껍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