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것이 안 되는 거고, 안 되는 것이 되는 거고

하루를 보듬는 도덕경 17 / 덕경편 42장(1/3)

by 신아연

다시 도덕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하필 도덕경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만났네요. 42장 첫구절만 잘 넘어가면 81장까지 나머지 내용은 수월합니다. 오늘만 좀 고생하지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라고 해석하면 무난하겠지만 그렇게 풀면 지금까지 공부한 것과 아귀가 안 맞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어딘가에 도가 있었고, 그 도에서 맨 처음 존재인 하나가 나왔다고 하면, 도는 어디서 나올 수밖에 없지요? 네, 무(無)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되잖아요.


모호해서 멋있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저는 이런 식의 말에 질린 사람입니다. 대학 때 철학과 다니면서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말들을 너무 많이 들은 탓이죠. 교수들 자신도 소화 못 시키고 한 소리란 뜻이죠. 그럴 때 저는 차라리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들의 번역자가 강의실의 같은 교수들이었죠.


주역 개념을 근거로 하여 "하나란 주역의 태극을 의미하며, 태극에서 둘, 즉 음과 양이 나오고, 음양의 조화로 셋이라 할 수 있는 세상만물이 나왔다, 일례로 남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듯이."라고 하면 아귀가 안 맞는다니깐요. 이 논리로 하자면 도는 그럼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요? 무에서 나왔단 소리잖아요. 무에서 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유는 어쨌거나 유에서 나와야 합니다.


(生)을 '낳다'로만 푸니까 무에서 유가 생겨난다는 비논리가 발생하는 겁니다. 도가 하나를 '낳는' 게 아니라 도는 '하나'라는 형식으로 '生 산다'로 이해하면 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게 되지요. 도는 하나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道生一), 그 하나는 반대되는 성향끼리 짝을 이루며(一生二), 그 반대 성향끼리의 조화 속에서 만물이 태어난다 (二生三)로 풀자는 거지요.


그래야 다음 구절과도 조응이 됩니다.


만물은 음을 지닌 채 양을 품고 있으며, 음양의 두 기가 만나 조화를 이룬다, 즉, 만물(三)안에는 음과 양(二)이란 반대되는 것끼리의 조화( 一)를 이룬 기운이 존재하고, 그 기운으로 인해 만물이 존재한다는 뜻이지요.


'하나'에 대해서 잠깐 복습하지요. 어떤 하나라고 했지요? 새끼줄처럼 꼬인 하나라고 했지요. 새끼줄의 특징은 뭐죠? 네, 짚을 서로 반대쪽으로 꼬아서 만들죠.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는 잡종이며 모순이며 아이러니며 대립적이죠. 하나를 다른 말로 뭐라고 했지요? 네, 도라고 했지요. 도에서 하나가 나온 게 아니라 도가 곧 하나라니깐요.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냐, 내 인생에서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하실 분들 계시죠? 상관이 있지요. 그것도 깊게. '반대편끼리의 조화'라는 사실에서 큰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잖아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그러면서 굴러가잖아요. 되는 것이 안 되는 거고, 안 되는 것이 되는 건 줄 누가 알겠습니까. 어긋한 기대가 오히려 내게 유익하고, 덥석 잡은 행운이 해롭게 작용할지 누가 알까요. 새옹지마처럼.


우리가 아는 것은 반쪽만의 진실일 수 있다는 것을, 꽃길만 펼쳐지는 인생은 없고, 설령 있어도 좋은 거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지요. 그리하여 지금 가고 있는 내 길이 최선이라는 걸 알고 그 길을 끝까지 가게 하지요. 저는 노자의 하나, 도를 제 삶에서 그런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내일은 그러한 인생사가 곧 순리라고 강조하는 노자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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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제 42 장


도는 하나를 살고

하나는 둘로 이루며

둘은 삼으로 존재한다.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가슴에 품고

두 기가 서로 조화를 이룬 형태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고아 같은 사람,

짝을 잃은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왕은 오히려

이것들을 자신의 호칭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세상 이치는

덜어내려 해도 오히려 더해지는 경우가 있고

더하려 해도 오히려 덜어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을

나도 가르치는데,

억세고 강한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

나는 이런 이치를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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