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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남편의 1주기, 그와 함께 남편에게 왔다. 그와 함께 찾아온 내가 남편한테 어떻게 비칠까. 옆에 선 그에게는 어떤 마음일까. 서운하고 괘씸할까? 분노하고 절망할까? 체념하며 인정할까? 거짓 없는 마음을 듣고 싶지만 유골함 옆 사진 속 남편은 여전히 속없는 웃음을 보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그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죽은 자의 방 앞에 목례한 후 조용히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내 뒷모습을 응시하고 섰을 것이다. 내가 추모를 마칠 때까지. 나도 역시 말이 없다. 그를 의식해서도 그렇지만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올 때마다 매번 말을 잃게 된다. 미안함, 사실 그것으론 미진하다. 뭐라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사가 정체 모를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차라리 혼자 올걸. 그와의 동행이 남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뒤미처 든다. 그를 의식하지 않고 남편과만 있고 싶다. 남편 곁에 좀 더 머물고 싶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이 휘저어지기 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을 벗어났다.
봉안당 마당을 걸어 나오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말이 없다. 늦가을 바람에 날리는 빛바랜 낙엽만이 둘 사이에서 수런댔다. 나도 그도 세상 떠난 남편에게 면목이 없어서일까. 그에게 죽은 남편은 어떤 마음, 어떤 존재인지, 나는 죽은 남편과 관련하여 그를 어떤 마음,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 지금껏 한 번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환갑이 되던 지난해 11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 판정 3개월 만에.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와 나를 더 가깝게 끌어당긴 건 아니다. 남편을 잃은 나를 그는 세심하게 위로하며 다정한 의지처가 되어주었지만 내 마음은 되레 그에게서 멀어졌다. 남편과 함께 만날 때의 그와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보는 그가 내게는 달리 비쳤기 때문이다. 처절히 슬프고 공허했지만 왠지 그에게 기대고 싶진 않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것 같아 오히려 그를 멀리하고 싶어졌다.
남편은 세상 뜨기 3일 전, 그에게 나를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보살펴달라며. 그렇게 해준다면 편안히 눈을 감겠다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말에는 거짓이 없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남편의 진의, 속내가 궁금하다. ‘나 죽으면 너희 두 사람 어차피 함께 살 거니까 차라리 내가 선수를 치마. 그래야 두 사람도 맘 편히 살 거 아니냐’는 식의 자포자기적 선의였을까. 아니면 그렇게 말함으로써 정말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흐릿하나마 그와 나의 가슴에 죄책감의 주홍글씨를 새기고 싶었던 걸까.
그와 나는 잘 지내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마님, 그는 돌쇠로. 그에게 나는 얼마간의 환상적 존재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남편이 가고 나니 둘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그렇게 굳어지고 있다. 그는 이혼남이다. 5년 전 아내의 외도로 갈라섰다. 그가 이혼하기 전 우리는 부부가 함께 만났다. 그런데 지금은 그와 나만 남았다. 내 남편은 죽고, 그의 아내는 떠나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
우리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그는 남편의 후배고, 그의 아내는 내 후배다. 지인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우연히 합석한 후 서로 마음이 맞아 자주 만났다. 관계가 어색해진 것은 그가 나를 좋아하면서부터였다. 선배의 아내를 연모하는 후배,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가 나에 대한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의 아내와 내 남편을 불쾌하게 했다.
물론 그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어느 날 과음한 그가 술잔의 술을 흘리듯 나에 대한 마음을 흘렸을 뿐이다. 나를 좋아한다고. “저도 좋아해요”라고 농담조로 대꾸하며 어색해진 자리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못했다. “ΟΟ 씨를 사랑한다고요. 왜 제 마음을 몰라주시는 거예요. 저 정말 슬퍼요”라며 이번에는 내 이름까지 넣어가며 속내를 드러냈다. 아무리 술기운이라 해도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가 늘어놓는 고백 아닌 고백에 남편은 나를 흘기며 마뜩잖은 눈길을 보냈고, 그의 아내는 나와 그를 번갈아 보며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붉혔다.
나중에 들었는데 당시 그의 아내에게 따로 만나는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아내의 외도로 인해 괴롭고 외롭던 그가 시나브로 내게 끌린 것이리라. 그걸 빌미로 그의 아내가 상황을 제대로 이용했다. 그 일을 꼬투리 삼아 적반하장으로 자기 연애를 합리화하며 냉큼 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가눌 수 없이 무너진 그는 아내가 하자는 대로 했고, 그렇게 혼자가 된 그를 우리 부부는 보듬을 수밖에 없어 셋이 만남을 이어갔던 것이다.
이후 우리 부부와 그, 이렇게 세 사람이 만나는 동안 전과 같은 민망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깍듯했고 과묵했다. 남편은 별다른 내색 없이 선배로서 혼자 된 후배를 묵묵히 챙겼고, 나는 나대로 어떤 틈도 보이지 않고 남편 옆에서 깔끔히 처신했다. 남편이 원하지 않았다면 그 만남은 진즉 깨졌을 테지만, 그렇게 갑자기 훌쩍 떠날 예감이 있었던 걸까. 결과적으로 나를 그의 곁에 둔 것이다.
게다가 그 무렵 남편이 하던 일이 잘되지 않았던 것도 그를 떨쳐내지 못한 현실적 이유였을 거라 짐작한다. 남편은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고, 워낙 성실한 사람이라 빠듯하나마 자력으로 꾸려가고 있으려니 했다. 그에게 빌린 자금이 윤활유가 되고 있었던 것을 나만 몰랐다. 물론 그가 돈으로 남편을 조종하거나 심리적 압박을 가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입장은 또 달랐을 것이다. 자기 아내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는 얼씬도 못 하게 단속하지 못했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심 불쾌했다. 남편이 나보다 사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좋아하는 그의 마음을 이용해 나를 볼모로 모종의 거래를 한 것 같아 원망 어린 마음이 배어 나왔다.
어쩌면 그가 희생을 하고 있었을지도. 나에 대한 호감 하나로 본인 또한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선배에게 돈을 빌려줘야 했으니. 그게 사실이라면 그렇게라도 해서 내 언저리에 있고 싶었을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남편이 ‘시퍼렇게’ 살아 있고, 더구나 속속들이 사정을 아는 상황에서 내가 그에게 뭘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우리는 한 가족으로 지냈다. 그는 정서적으로, 우리는 그에게 재정적 도움을 받으며.
그랬는데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에게 나를 돌봐달라는 부탁까지 남긴 채. 처음엔 네 사람이 세 사람으로, 세 사람이 두 사람으로 만남을 달리하는 동안 마음 또한 상황 따라 변했을 것이다. 한 가지 공통점은 멤버가 하나둘 떠나도 만남은 이어져왔다는 것이니, 이제 우리 두 사람은 언제까지 이 만남을 이어가게 될까. 그리하여 그와 나 둘 중 하나가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함께하게 될까. 그는 여전히 내 마음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문고리가 안으로만 있어서 자신은 감히 당겨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이….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신아연 작가
bravo@etoday.co.kr
(브라보 마이 라이프)
지난달 나는 아내와 재결합했다. 20년 만이다. 지금 내 나이는 70, 긴 외도 끝에 이른바 조강지처의 치마폭으로 ‘기어들었다’. 나는 서울의 명문 치대를 나와 강남에 치과를 개업하고 큰 기복 없이 순탄하게 운영하고 있다. 당시 강남은 지금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선견지명으로 일찌감치 터를 잘 잡았다. 병원에 간호사도 여럿 두었는데 그중 하나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우리 병원의 수간호사 격이라 나이도 제법 있어, 나와는 고작 열 살 남짓 차이 났다. 집이 가난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간호조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이 바닥에서는 베테랑에 속했다.
그녀는 40 즈음에, 그러니까 내가 쉰 살 되던 해 우리 병원에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위 말하는 나의 오피스와이프가 되어주었다. 치과 업무를 속속들이 안다는 것은 나의 일과 나의 삶을 동시에 이해한다는 의미였다. 나의 꿈과 나의 좌절을 공감하며 위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내한테서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더구나 어린 나이에 사회와 부딪히며 나름 내공을 쌓은 덕에 타인에 대한 이해심도 깊었다. 무엇보다 영리하고 야무졌다. 급기야 나는 그녀와 딴살림을 차렸다. 이혼은 하지 않았다. 아내가 원하지 않기도 했지만 그까짓 절차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자와 살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내겐 더 바랄 것이 없었으니까. 그럼 아내는? 아내는 사랑하지 않았냐고? 아내는 아내고 그녀는 그녀였다.
뻔뻔하다고 나를 욕해도 하는 수 없다. 나도 안다. 나는 욕을 먹어도 싸다. 단순한 바람으로 그쳤다면 차라리 덜 욕을 먹었으려나.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함께 살수록 뒤늦게 참사랑이 찾아온 거란 믿음이 솟았고, 그녀와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었다. 그랬던 그녀와 헤어진 후 돌이켜보면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신고를 하고, 그녀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그러면 적어도 쪽박은 차지 않았을 테니까. 정식 부부였다면 뭐라도 공동 명의로 남은 게 있었을 테니.
무슨 소리냐고? 그녀는 함께 살던 아파트와 내 전 재산을 독차지한 후 나를 내쫓았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 명의로 아파트를 사줬고, 집을 나온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녀의 아파트였지만 사는 동안은 ‘우리의’ 아파트였던 셈인데, 헤어진 마당에는 엄연히 ‘그녀의’ 아파트란 사실에 나는 치를 떨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치과 수입을 그녀가 관리하는 일도 나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살림을 하는데 여자가, 더구나 야무진 그녀가 돈 관리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녀는 재테크에도 제법 소질이 있어서 적절한 투자로 돈을 불려나가는 재주도 있었으니까. 20년간 아내에게 보내는 생활비를 빼놓고는 내 돈도 그녀 돈이요, 그녀 돈도 그녀 돈인 줄 진정 난 몰랐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의 20년 생활을 청산하면서 몸뚱이만 남게 된 것이다.
헤어진 후 내 수중에는 생활비를 넣고 빼고 하던 허드레 통장 하나뿐. 잔고라곤 겨우 이삼백만 원. 그 통장과 옷가지만 들려서 나더러 나가라고 했다. 법에 호소하여 찾아올 돈이라곤 전혀 없었다. 실상 나는 돈보다 그녀와 헤어지게 된 것이 더 충격이었기 때문에 재산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왜 쫓겨났냐고? 나도 그걸 모르겠다. 20년을 함께 살았으면 부부와 다를 바 없건만, 지난 20년 동안 그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나와 살았던 것일까.
그 길로 아내를 찾아갔고, 아내는 나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나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병원과 아내의 집, 아니 이젠 내 집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아내와 나는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아내가 지난 이야기를 꺼내며 바가지를 긁지도 않는다. 언제 폭탄이 터질지 조마조마하지만 겉으로는 평온이 유지되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20년 만에 아내와 재결합한 사연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한 달 전 나는 남편과 재결합했다. 내 나이 68세, 남편이 집을 나간 지 20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나갈 때처럼 올 때도 빈 몸, 빈 손으로. 남편을 선뜻 받아준 나를 주위에서는 등신이라고 했다. 등신 중에서도 상등신이라고 했다. 지난 세월 그 고생을 한 것이 억울하지도 않냐면서.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 인간을 받아줬냐는 거다. 안 할 말로 멀쩡하게 함께 살던 남편도 나이 드니 귀찮아서 떼놓을 궁리를 하는 판에. 혹시 데려다놓고 복수하려는 거냐고까지 했다. 혹자는 남편이 그렇게 좋냐며, 그렇게 사랑했는데 지금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냐고 진심으로 물었다. 사랑? 솔직히 그건 모르겠다. 남편을 사랑해서 받아준 거냐고 묻는다면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할 수밖에.
소설가 이외수의 아내 전영자 씨가 몇 년 전 졸혼했다가 뇌출혈로 투병 중인 남편을 돌보기 위해 최근에 다시 합쳤다지만, 내 남편은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졸혼으로 따진다면 우리 부부는 이미 20년 전에 남남이 되었지 않나. 그런 사이에 무슨 새삼스럽게 사랑 타령…. 그럼 돈 때문이냐고? 나이 70에 손 떨려서 앞으로 얼마나 진료를 더 할 수 있을 것이며, 게다가 이미 소문이 자자하게 났을 테니 환자인들 제대로 올까.
이쯤 되면 내 행동에 대한 명분이 필요하다. 아비투스라는 게 있다.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천성을 일컫는 말이다. 한마디로 내가 속한 계층,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즐겨 하는 일 등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를 일컫는다. 즉 남편을 받아들인 것은 나의 내면화된 천성에 기인한 품위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20년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이 결국 헤어진 것 또한 아비투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천성과 그 여자의 바탕이 다름에서 온. 걸레를 아무리 깨끗이 빨아도 행주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결국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리라.
즉 내가 남편을 받아들인 건 그를 끔찍이 사랑해서도, 나의 현실에 부족함이 있어서도 아니다. 눈물도 말라버린 그 수많은 날들이 곰삭아 이제 독립과 자유로 보상을 얻게 된 마당에 새삼스럽게 그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속옷을 빨아주는 게 난들 즐거우랴. 아니 그런 것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 무엇보다 나의 내면화된 선비 기질과 인격이 질척함이나 천박함과 함께 뒹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 재결합은 나의 높은 자존감의 선택이다.
중년에 떠난 남편이 초로의 노인이 되어 내 곁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낯설지만 코 고는 소리만큼은 그대로다. 부부로 이 남자와 남은 시간을 잘 살아내느냐 마느냐는 나 하기에 달렸다. 나의 아비투스를 신뢰하며!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신아연 객원기자
bravo@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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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첫사랑 그녀의 응답을 받았으나…
2021. 9. 20. 8:27
https://blog.naver.com/timetosapyo/22251128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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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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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게 이렇게 자학 증상이 깊은 줄 몰랐다. 니체는 사랑이란 정과 망치로 하는 거라고 했다. 돌 안의 형상을 망치와 정으로 쪼고 깨서 오롯이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그러나 나의 사랑은 그녀의 날카롭고 거친 정과 망치에 맞아 아예 형체도 없이 부서질 지경이다.
내가 옛 연인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옛 연인’이란 말은 정정하자. 쓰라리고 아프지만 그 말은 쓰지 않기로 하자. 나의 이런 표현이 그녀를 더 질색팔색하게 하니까. 건강한 사랑은 자존감이 우선이어야 한다지만 그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나의 꼬락서니라니.
나는 안정된 직업과 안온한 가정을 가진 중년의 ‘멀쩡한’ 남자다. 지난 사랑의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것만 빼고는 관계 맺는 데에도 상식적인 사람이다. 전문직을 갖고 있지만 이게 그녀의 더 큰 밉상을 사게 될 줄이야. “나이 들어서도 먹고사는 걱정이 없으니 재미 삼아 날 쫓아다니는 거냐,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나는 살아가느라 하루하루 허덕이는 사람이다. 당신처럼 한가하게 사랑 타령이나 할 여유가 없다”며 내게 쏘아붙였던 것이다. 벌침 정도가 아니라 말벌에 쏘인 듯 몸을 가눌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한동안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따라다닌 결과가 결국 그런 통박이냐고? 당신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냐고?
전문직 종사자라는 소개는 방금 했고, 객관적으로 봐서 나는 외모도 괜찮은 편이다. 곱상한 얼굴도 얼굴이지만, 60대 중반의 남자로 배 안 나오고 머리 벗겨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본 이상이 아닌가. 성격은 내성적이며 소극적인 편이다. 그녀를 쫓아다니는 적극성만 빼고는.
소위 ‘꽃미남’이었던 나는 사춘기 때부터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었고, 때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예민한 자의식의 시기, 이성에게 인기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시절, 내 매력에 내가 ‘쩔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번 거절당했고 단 한 번도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적 없이 무심히 세월만 흘렀다. 그렇게 좌절된 내 사랑은 지금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남들은 집착이라고 했고, 그녀는 스토킹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교회 수련회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나도 그녀도 새 신자에 속했으니 그룹 내에서 동질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고3이 되어서도 2년 내내 그녀는 시종일관 내게 무관심했다. 그녀 말마따나 우리에겐 어떤 추억 한 자락도 없다. 그러기에 지금 와서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이 들고 세파에 치인 모습도 보이기 싫다며. 인정한다. 그녀와 내가 공유할 추억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무리 속에 있었으니까. 단 한 번 핑곗거리를 만들어 빵집에서 크림빵과 우유를 시켜놓고 마주 앉았지만 그녀는 멀뚱했고 나는 애만 탔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는 무려 50년 동안 첫사랑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그의 자전적 소설 ‘첫사랑’에서 40대 주인공 블라지미르를 내세워 ‘겨우’ 30년밖에 안 된 사랑에 괴로워했지만 나한테 비하면 약과인 셈이다.
아, 여기서 잠깐, 어쨌거나 당신은 유부남 아니냐고 비난하지는 마시라. 내가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으니까. 난 그냥 말을 붙여보고 싶고 만나 차 한잔 하고 싶을 뿐이니까. 그렇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봐온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난 50년 동안 그녀는 늘 내 가슴속에서 살았으니까. 참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내 가슴 한편은 늘 시렸고 구멍이 나 있었다.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이. 그 구멍을 내 맘속 그녀의 존재로 채우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는 모범 가장이자 자상한 남편, 애정 많은 아빠였다. 그 사실은 그 공허함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단 뜻도 된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며 이렇다 할 추억거리 하나 없는 우리의 사랑, 아니 나의 사랑을 한심해하며.
10년 전쯤 그녀가 남편과 사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묘하고 정신이 멍했다. 지금까지 1년에 한두 번 정도 나를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문자를 보내오다 그녀가 혼자가 되었다는 말에 용기를 낸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10년이나 지나서.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에 균열을 가져온 것일까.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응답이 없다가 50년 만에 반응이 왔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문자 메시지로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있겠냐고 했다가 예상대로 된통 구박을 받았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삶에 지치고,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만으로도 골치 아픈 사람이다. 당신처럼 추억에 잠길 새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 사귄 적이라도 있냐. 왜 일방적으로 이러냐. 다시는 이런 것 보내지 마라. 또다시 이러면 당신 아내한테 알릴 수도 있다’는 답이 온 것이다. 불쾌감과 노기가 서린 글자 하나하나마다 굳은 표정으로 정과 망치를 들고 내 가슴을 찍고 쪼개는 그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된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도 저럴지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언제 한 번이라도 그녀 마음 한 귀퉁이나마 차지한 적이 있었던가. 도대체 나는 왜 자존심도 없는 찌질한 인간이 되었을까.
그럴 듯한 사회적 위치의 나를 망각한 채 그녀를 향한 마음의 고삐를 어찌하여 50년 동안이나 다잡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수모를 겪고도, 그녀의 매몰찬 말을 가슴에 비수로 꽂고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남자들은 여자들과 달리 이별 후 애도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한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와 나는 이렇다 할 연인 사이가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차이가 없다. 정신의학자이자 죽음 연구자인 퀴블러로스는 죽음에 버금가는 상실의 단계를 이렇게 말한다.
뜻하지 않게 연인과 헤어지거나 버림을 받았을 경우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별은 기정사실이 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분노하게 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이 단계에서 나온 것이라나. 그러다 분노는 슬픔으로 변하고 그(그녀)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부터 한없이 우울하고 깊은 슬픔에 빠지지만, 동시에 떠나보냄의 애도 과정이 완성되면서 삶은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내 사랑에 대한 애도는 어느 단계에서 멈춘 것일까. 부정일까, 분노일까, 슬픔일까, 아니면 아직 한 스텝도 내딛지 못한 것일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 2021년 9월호(VOL.81)에 게재됐습니다.>
신아연 작가
shinayou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