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혼의 차이는? (3)
주말과 휴일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요즘 눈을 덜 혹사하려고 책을 거의 읽질 않아 가장 오랜 친구를 잃어가는 느낌입니다. 연인이 떠나가지만 붙잡지 못하는 신세만 같습니다. 지금 제 처지에선 책 읽고 글 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건만, '읽기'라는 한쪽 날개가 부실합니다. 이러다 '쓰기'라는 다른 쪽 날개도 영향을 받게 될까 두렵네요. 왜냐하면 새는 양 날개로 날아야 하니까요. 아니, 새는 온 몸으로 날아야 하지요.
요즘 우리는 도덕경을 잠시 미뤄두고 영과 혼에 대해 공부하고 있지요. 영과 혼의 관계를 계란의 노른자와 흰자를 비유로 들어 설명했는데, 거기에 대해 이런 댓글을 받았습니다.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면 분리가 불가능하지요. 영과 혼은 섞이되 분리가 가능한 상태로 섞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영과 혼 각각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섞이는 것이지요. 마치 비빔밥의 밥과 나물처럼 말이죠. 물리적 결합과 화학적 결합의 차이를 말할 때처럼 영과 혼의 결합은 물리적 결합형식이지 화학적 결합 방식은 아닌 거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영과 혼은 분명히 나뉘어져 있지요. 그러나 영은 태극 자리라고 했지요? 도의 자리라고 했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것으로 본다면 황극의 자리입니다. 그 자체로는 느껴지지도 인식되지도 않는 중심자리입니다. 말씀이자 로고스지요. 이것은 혼 작용에 의해 비로소 운행되기 시작합니다. 태극에서 음양으로, 도에서 덕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본체계에 의해 현상계가 펼쳐지는 거지요.
계란의 노른자위는 영의 자리지요. 흰자와 섞이되 노른자가 흰자를 물들입니다. 계란을 깨뜨려 섞어 보세요. 노란색이지 흰색이 아니지 않습니까. 노른자가 주도권을 갖는 거지요. 흰자와 노른자가 새의 각각 양 날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섞여 몸통을 날아오르게 하는 거지요.
"우리의 삶은 흰자와 노른자, 즉 영과 혼이 함께 작용하여 살아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재분리, 환원한 상태는 생각해 보질 않았네요. 그리고 다시 나눌 필요도 없구요. 일단 섞이게 되면 영 쪽으로 (노른자위 쪽으로) 혼이 물들면서 성장해야 하니까요.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성화(聖化)라고 하지요. 덕이 깊어지는 거지요. 영과 혼의 결합은 비빔밥 결합처럼 물리적 결합이 아닌 계란물 결합인 화학적 결합이라고 해야 겠지요. "
이렇게 답을 드렸습니다. 다시 영과 혼의 차이로 돌아가 말한다면 댓글 주신 분 말씀처럼 영과 혼은 분명히 고유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혼의 사람이 많습니다. 제 주변에는 특히 많습니다. 인본주의적인 사람들인 거지요.
영의 자리에 혼을 앉힙니다. 계란의 노른자위는 없고(엄밀히 말하면 인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고) 흰자만 가진, 자아로 충만한 사람들인 거지요.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인 사람들인 거지요.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구요.
내 삶의 주인 자리를 바꾸는 것, 혼에서 영에게 내주는 것이 영성입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입니다.
오래 전, 제 둘째 아들이 이러는 거예요. "어떤 여자가 앞에서 걸어오는데 상당히 지적(知的)으로 보이는 거예요. '저 아줌마 참 인텔리전트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엄마더라구요. 하하" 아들과 제가 각각 외출했다가 시내에서 우연히 만난 거지요.
저는 살면서 예쁘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지적이라는 소리는 몇 번 들었습니다. 아들 눈에도 제가 그렇게 보였던가 봅니다. 이런 낯 간지러운 말을 하는 이유는 이제는 '영적으로 보인다. 영성이 깊은 사람 같다'는 말을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2주 후면 호주의 그 아들이 한국엘 옵니다. 너무나 오랜 만에 만나는 아들에게 "엄마, 참 영적이세요!" 란 소리를 정말이지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