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보니 두 통의 카톡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하나는 어느 젊은 남편이 보낸 것으로, 별거 중인 아내가 3년 만에 말을 걸어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자녀로 인해 가슴 아픈 제 또래 어머니의 글이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눈에 안 보이는 영적세계가 다스리고 있음을 강하게 믿게 되었어요. 저 세상이 실상이며 이 세상은 허상인 거지요. 저는 그저 평안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속고 있었던 거예요. 그 동안 저나 우리 가족이 지었던 죄나 잘못 때문에 누군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제가 치르고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요."
그러면서 두 사람 모두 제게 계속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비슷한 시간대에 받은 두 통의 놀라운 메시지. 이런 것을 두고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하는가 봅니다.
저는 최근에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믿게' 되었다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종교나 신앙체계에 머물며 타성화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르는 것이 믿는 것이지만, 믿는다고 해도 따르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봤기 때문이지요.
저는 성경에 쓰여있는대로 예수님을 따라 사는 '따라쟁이'가 되기로 하고 날마다 따라하고 있습니다. 어미 오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처럼 자주 비척대지만 매우 익사이팅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제게 기도부탁을 해오는 분들이 더러 계시고 저는 그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랬는데 오늘 이런 응답을 받은 거지요.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저나 여러분이나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에 대한 인식장치가 아예 없다는 것을 알고 묻는 말씀입니다. 여자에게 남자 성기가 없고, 남자에게 여자의 것이 없는 것처럼요. 이런 자극적이고 엉뚱한 비유를 드는 이유는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죽음이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해 열 명 남짓한 고교 동창생이 세상을 떠났지만 나도 죽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 75세 지인이 계십니다. 어디 그분뿐일까요? 당장 내 옆에서 누가 죽어도 나는 안 죽을 것 같잖아요. '나도 죽는다'를 구호처럼 외치고 주문처럼 웅얼거려도 실감되지 않는 거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 이후'를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떤지 몰라도 제 경우, 죽음 자체는 와닿지 않지만 '죽음 이후'는 차분히 떠올리게 됩니다. 그게 그 말이 아니냐고요? 그게 꼭 그렇지가 않더라는 거죠.
앞에서 영적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한 분과, 기도로 인해 아내와 소통의 길이 열렸다는 남편의 경우를 봐도 이 현상계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이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나요? "뭐 그 정도 일을 가지고 영적 세계씩이나" 하실 분도 계시겠지요. 영적 세계와의 교신 안테나가 설치되지 않아 체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통일 수밖에요.
죽음이라는 무섭고 칙칙한 단어를 빼고 생각해 보자구요. 사람은 영적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면 '혼적 세계'인 이 세계와는 다른 '영적 세계'가 당연히 있어야 하고, 제게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지요. 이 세상의 삶을 마친 후 예수님을 뵈러 간다는 생각이 저를 평안하고 기쁘게 합니다.
저는 찬송가 240장을 좋아합니다. '하늘나라 올라가서 주님 앞에 절하고 온유하신 그 얼굴을 뵈올 때(2절)'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면 한 없이 눈물이 납니다. 호주의 아들에게 제 장례 때 이 찬송가를 불러달라고 부탁해 두었습니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605] 목요죽음이야기(45) 영적세계의 응답|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