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과 혼의 차이는 (2)
어제 영과 혼의 차이에 대한 글에 몇 분이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 분은 그제의 글을 언급하셨어요. 컵이 있는데 컵 속에 지성이 가득 차 있으면 영성을 채울 수 없으니 우선 지성을 비우고 보자는 내용에 대해서. 자신은 그다지 지성적인 사람이 아니니 어차피 비어있는 컵에 그대로 영성을 채우면 되겠다고 하시면서.^^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이어령 교수가 수년 전 세례를 받은 사실을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면서 상징적으로 뽑은 제목이지요. 그후 그대로 이교수의 책 제목이 되었고요.
지성에서 영성으로저자이어령출판열림원발매2017.09.05.
지성인 중의 지성인인 이교수에 대해서는 그렇게 표현했지만, 영과 혼을 구분하는 맥락에서 지성은 '혼성(魂性)'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 마음과 생각으로 가득 찬 자아와 에고의 컵을 비우고 참나인 영성을 붓자는. 그렇게 컵 속 내용물이 교체되는 것을 기독교에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요.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어제는 영, 혼, 육이 구분되어 뒤섞일 일이 없을 것 같더니 오늘은 영과 혼이 왜 함께 부르스를 추냐고요? 어제는 영, 혼, 육의 양태를 설명한 거고 오늘은 그 작용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태극이 존재하고, 그 태극이 음양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영,혼,육이 마치 계란의 노른자(영), 흰자(혼), 껍데기(육)처럼 구분되어 있지만, 계란을 깨뜨려 요리를 하면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영과 혼을 합쳐서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고, 제 글의 문패도 '영혼의 혼밥'인 거죠.
우리 내면에는 영적인 것과 혼적인 것이 함께 작용합니다. 컵이 육신이라면 컵 안은 내면입니다. 육신은 멀쩡해도 내면은 매순간 요동을 칩니다.
혼으로만 사는 사람은 오히려 갈등이 없겠지요. 오직 자기 생각, 자기 마음, 자기 감정 등 자기, 자기, 자기로만 가득 찬 '자아충만'한 사람들. 그런데 의식하든 못하든 사람은 영물(靈物)이니 언뜻 영적 각성이 끼어들 때가 있습니다. 옷 갈피에 스며든 머리카락처럼, 이빨 사이에 낀 고추가루처럼 '양심'이라는 영의식이 자의식을 불편하게 건드리는 거지요.
이렇게 엇박자 스텝을 밟으며 혼과 영이 돌아갑니다. 표현은 혼이 합니다. 흔히 내 안에 천사와 악마가 싸우고 있다고 말하듯이. 천사 쪽으로 혼이 흐르면 영성이 높은 사람이고, 악마 쪽으로 혼이 따라가면 육의 욕구에 자주 복종하는 사람인 거지요. 야밤에 치맥이나 라면을 먹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세요. ㅎㅎ
영은 완전한 내면자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하는 성경 말씀처럼.
우리 안에 그 자리가 있습니다. 영이 있습니다. 풍랑을 만나 두려워 어쩔 줄 몰라하는 제자들의 모습만이 우리가 아니라, 그 소동과 요동 가운데서도 태연하게 주무실 수 있는 예수님의 모습도 우리 내면에 있습니다.
오늘도 영과 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기왕 시작한 거 하는 데까지 계속 해 보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