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과 혼의 차이를 설명해 달라는 분이 계셨어요. 지상 강의에서 쌍방소통이 일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니 오늘은 잠시 진도를 미뤄두고 독자 요청에 응하기로 하지요. 저는 밥 먹고 이런 공부만 하는 사람이라 여러분들이 뭘 물어오시면 신이 나죠.^^
인간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육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의 오감을 느끼는 곳이죠. 오감의 만족을 위해 죽으라고 맛집을 찾고 전 국민의 동안(童顔)타령에,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100세 시대의 건강 구호를 외치며 우리는 육체의 일에 거의 모든 시간과 돈을 쏟아붓지요.
반면 혼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옳고 그름에 따라 행위하고, 싫고 좋고의 감정을 발생시키는 지성, 감성, 의지의 작용입니다. 마음과 생각의 영역으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은 혼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 거지요.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고 마음이 아프면 상담을 받습니다. 생각이 혼미하고 정신이 이상한 것이 뇌기능 문제인지 심리문제인지 파악하기 위해 '신경정신과'를 찾기도 하고요.
보통 사람들은 육과 혼, 이게 전부인 줄 알아요. 내 생각, 내 마음,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이게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사는 거지요. 한 마디로 신체와 뇌 작용으로만 살다가 죽으면 끝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또 다른 영역이 있습니다. 그 영역이 바로 영이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불교에서는 불성, 고대 인도 철학에서는 아트만, 제가 자주하는 말로는 우리 안의 신성, 참나입니다.
제가 어제 글에서 즐거이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 것도 바로 이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인 겁니다. 언어는 지정의(知情意), 즉 혼 세계의 최고 지휘관이죠. 생각은 언어와 딱 붙어 있지요. 생각이 말로, 글로 표현되는 거니까요. 생각이 일어나면 행동이 일어나고 행동이 일어나면 감정이 발생하지요.
반면 영의 세계는 침묵의 세계입니다. 이해와 분석이 통하지 않는 직관의 세계입니다. 종교적으로는 믿음의 세계이며, 노자적으로는 도와 명(明)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언어를 놓아두고 바보가 되거나 기도로 들어가는 세계인 거지요. 때로는 명상으로, 수행으로 더듬어 들어갑니다.
혼과 달리 영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죽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는다는 뜻이지요. 원래 있었다는 뜻이지요. 뇌작용과는 무관하다는 뜻이지요. 죽으면 그 영이 영원한 세계, 본향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돌아간다'는 게 그런 뜻입니다.
영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본인이 인지하지 못할 뿐, 원래 있는 것이니 믿고 안 믿고의 대상도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육과 혼밖에 없다고 간주하는 사람이니 사람이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고 표현하면 안 되는 거지요. 돌아갈 게 없으니까요.
영은 원래 있었을 뿐더러 혼과 육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곳입니다. 태양 자리 같은 생명의 원천인 거지요. 영이 존재의 핵심입니다. 존재의 뿌리이자 참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영의 존재를 모르고 사는 거지요. 왜냐하면 영은 오감처럼 느껴지지도, 정신작용으로 이해되지도 않으니까요.
간단히 이렇게 말해보죠.
'나는' 신아연이다. '나는' 60살이고, 키는 162센티, 몸무게는 100킬그램 밑이다. '나는' 여자다. '나는' 두 아들을 두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는'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혼자 산다. '나는' 깨달음을 얻을 때 기뻐한다. '나는' 숨쉬기 운동만 한다. '나는' 돈이 없다.
여기서 '나는'에 해당하는 것이 '영'입니다. 뒤에 묘사하는 말은 혼이거나 육의 상태입니다. 'I am'이 영입니다. 영은 설명과 묘사의 대상이 아닌 주체이자 주어입니다. 하나님을 'I am'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연유입니다.
나는 이름으로도, 성별로도, 키로도, 몸무게로도, 하는 일로도, 가진 것으로도, 결혼과 자녀유무로도, 감정으로도, 느낌으로도, 생각으로도, 행위로도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그냥 나'인 거지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가 생각나시지요? 도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영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지요. 도를 말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며, 영을 말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영이 아닙니다.
혼과 영의 차이를 이해하셨나요? 쉽게 말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요.ㅜㅜ
오늘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신간
작가 신아연
출판 책과나무
출간 2022.08.26.
스위스 조력자살을 선택한 세 번째 한국인과 동행한 저자의 체험 기록이자, 삶과 죽음을 다룬 철학 에세이. 독자라는 인연으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폐암 말기 환자의 조력사 동반 제안을 받아들인 후, 환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동안 저자 본인의 감정적 파고와 안타깝고 절박했던 현장의 상황을 올올이 써 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죽음 배웅을 하고 돌아온 저자는 그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으로 침잠한다. 그 과정에서 창조주를 만나게 되고, 극한의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한 그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 이면의 죽음마저도 영생을 향한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며 담담히 뒤늦은 말을 걸고 있다.
스위스행 편도티켓을 쥔, 일면식도 없던 조력자살 희망자와 동행한 저자의 기록
우리나라도 안락사나 조력사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때에 2016년과 2018년에 이어 2021년,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택한 말기 암 환자와 동행한 후, 내밀한 시선과 섬세한 필체로 담담히 써 내려간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는 우리 내면에 충격적이면서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법 제정 운운 이전에 삶과 죽음이 일상 대화 속으로 들어오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과 스위스까지 함께 가줄 수 있는가?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어느 날 한 독자로부터 스위스 조력사 동행 제안을 받는다. 본인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 책에는 죽음 여행을 떠나기 전, 죽음과 삶을 성찰하며 두 사람이 나눈 깊은 인문적 대화와, 실제로 죽어야 하는 사람과 그 죽음을 간접 체험하는 사람의 공포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위스로 떠나기 전, 저자는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보리라 마음을 다잡지만 결국 죽음의 침상에 눕고 마는 그를 보며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든다.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당신도 조력사를 택하겠는가?
특별한 배웅을 하고 온 저자는 안락사와 조력사 논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위태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스위스에 동행했다고 해서 본인이 조력사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조력사 현장을 경험한 후 기독교인이 된 저자는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며 따라서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조력사는 또다른 조력사를 부를 것이라는 현실적 우려와 함께.
글을 시작하며
Part 1
2021. 7. 25(일)
스위스 안락사 동행 제안을 받았습니다
8. 10(화)
죽음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8. 13(금)
스위스행 항공권을 받다
8. 21(토)
생애 마지막 생일
8. 22(일)
죽으러 가기 위한 코로나 검사
8. 23(월)
죽음의 대기 번호 ‘444’
8. 24 새벽(화)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스위스로
8. 24 오후(화)
드디어 그를 만나다
8. 25(수)
귀천을 하루 앞둔 날
8. 26(목)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다
Part 2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한 5개월
내가 만난 큰 바위 얼굴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두 가지 문제
삶과 죽음의 맞선 자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이 주는 의미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죽음을 쓰는 사람
막상 내 죽음이 닥쳐 봐, 그게 되나
영성의 배내옷, 영성의 수의
죽음은 옷 벗기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
나의 영끌리스트
죽음 앞의 소망
사후 세계의 확신
신이 뭐가 아쉬워서
글을 마치며
저 : 신아연 (Shin, Ayoun,申娥延)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왔다. 21년 동안 호주에서 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천생글쟁이 신아연의 둘레길 노자’를 연재하며 생명과 마음치유에 관한 소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공저 『다섯 손가락』 『마르지 않는 붓』 『자식으로 산다는 것』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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