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0
나는 온종일 책을 본다. 심심해서 본다. 시간을 때우려고 본다. 살아 있는 한 시간을 메꿔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책을 몇 권 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쩌다 자기 책을 내기도 한다. 그 또한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려는 의도가 대부분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식이나 기술, 정보를 다룬 책이 아닌 이상 책의 내용은 저자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 나온다고 다 믿으면 책이 없느니만 못하다.”고 맹자도 말했듯이. 물론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에게는 해당 안 된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가장 우스웠던 수업은 시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시를 쓴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사실 알게 뭐라고, 이 단어는 빼앗긴 나라를 의미한다느니, 이 표현은 고국을 그리워하는 것이라느니 하고 단정할 수 있을까 말이다. 시뿐 아니라 다른 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에 휘둘리거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생각을 바꿔 처음부터 다시 쓰고 싶은 경우는 왜 없으랴. 그럼에도 우리는 무작정 믿어버린다. 글쓴이의 생각, 타인의 생각을 그대로 따른다.
남의 학설에 사로잡힌 자는 한 학설을 배우고 나면 아주 흡족해 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자기만족에 빠져 버린다. 남의 의견만 따르며 덧없는 안일에 빠진 자는 돼지 몸에 붙은 이와 같다. 거칠고 긴 털이 난 곳을 골라 살면서 그곳을 스스로 넓은 궁전이나 커다란 정원이라 생각한다. 돼지의 발굽이 굽은 안쪽이나 젖 사이, 다리 사이에 파고들어 그곳을 안전하고 편안한 집이라고 여긴다. 백정이 일단 팔을 걷고, 마른 풀을 깔고 불을 지펴 돼지를 구워 먹으려고 불태우면 자기도 돼지와 함께 타 버린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실로 스스로 좁은 경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면서 안일함을 탐하는 자라고 하겠다. - 박희채 『장자의 생명적 사유』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