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1
D잡화점 안. 정말이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문명이란 불필요한 것들을 끝없이 늘려 가는 과정’이라더니, 어디다 쓰는 물건인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이 넘치고 넘친다.
호주에 살 때 노인시설에서 6개월 정도 봉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한 달에도 몇 번씩 장례 치를 일이 생기곤 하는데, 생전에 소유를 즐겼던 분들은 유독 이것저것 소지품을 많이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다. 살아서는 나가지 못할 곳, 유명을 달리할 회색 지대, 이승과 저승의 환승역 같은 공간에서도 평생 살아온 습관대로 시간을 이어가는 것이다. 걸머졌던 자질구레한 것들을 종당엔 몸 비늘처럼 부려놓은 채 세상을 떠날지라도.
"사후에 너무 많은 것을 남겨두는 것은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호주 '시설'에서는 유족들이 유품을 거두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고인이 남긴 물건을 이삿짐 꾸리듯 몇 박스씩 넘겨주며 그들의 난감한 표정을 보는 것은 곤혹스럽다. 어찌 양로원의 일이기만 할까. 오늘 내 죽음을 만나지 말란 법이 없는데 산만하고 잡다하게 이것저것 가지고 있다면 그걸 정리해야 하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신세 지기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태어날 때와 죽을 때만큼은 남의 손에 의지해야 하니 너무 많은 것을 두고 떠나지 말 일이다. 죽은 자의 것은 소유하기를 꺼리는 우리 문화에서는 거의 모두 버릴 것들인 바에야. 물질이 흔하고 뭔가를 사들이는 것이 중독 현상처럼 된 요즘은 모르긴 해도 집집마다 물건이 넘쳐날 텐데 오늘 내가 죽는다면 그걸 누가 다 치운단 말인가." - 신아연 <내 안에 개있다> 중에서
4년 전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가 남긴 것은 옷가지 몇 개와 보퉁이 하나가 전부였다. 고관절 골절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길로 돌아가셨지만 갑작스럽게 닥칠지 모르는 당신의 죽음을 늘 대비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