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 59/2장
요즘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 문제가 여론의 중심에 서 있는데요, 역시 노자가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도자의 덕목 중에 검약이 최고라고 한. 국가 리더가 씀씀이를 자제하고 축재만 하지 않아도 평판의 반 이상을 먹고 들어가는 거죠.
비단 물질적인 검약만은 아닐 거에요. 도에 이르기 위해서 돈을 꼭 필요한 곳에만 쓰는 훈련을 해야 하듯이 절제, 자제, 검박은 생각에도 말에도 행위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요. 특히 국가 제도에도. 결국 지난 시간에 살폈던 "민민(悶悶)으로 돌아가자, 무위로 돌아가자"는 건데요. 이 대목에서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가 떠오르네요. 루소가 도덕경을 읽었던가 봐요. 노자 목소리를 흉내내는 걸 보면.
자녀가 됐든, 배우자가 됐든, 부하직원이 됐든 잔소리하고 싶고, 지적질하고 싶고, 시시콜콜 간섭하고 싶을 때, 즉 찰찰(察察)하고 싶을 때 자제하고 절제할 수 있는가를 우리 살펴보아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치달을 때 '그만!' 하면서 스스로 멈춰 세울 수 있는지를 우리 살펴보아요. 저는 이게 참 안 됩니다. 혼자 산 지가 어언 10년이라 어거지로 입은 봉해져 있지만, 생각은 술 취한 원숭이가 날뛰는 것처럼 자제가 안 되는 거지요.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원숭이가, 게다가 술까지 취한 원숭이가 머리 속을 온통 헤집어 놓으니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요즘은 생각을 '검소하게' 하는 훈련을 합니다. 어떻게? 머릿 속 원숭이를 데리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로 원숭이를 붙들어 앉힙니다.
행위는 또 어떤가요? 갈 곳, 안 갈 곳 온통 싸돌아다닌다면 역시 자제, 절제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주로 내가 어디 있는가가 곧 나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참고로 (코로나 전에) 저는 주로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ㅎㅎ
제도적 절제는 58장에서 살폈지요? 법령, 규제, 명령, 규칙, 지시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민은 빠져나갈 궁리를 하게 되고 멀쩡한 사람이 범법자가 된다고. 과거지사지만, 내 머리카락 내가 기르겠다는 데, 무다리든 말든 내가 미니 스커트 입겠다는 데 국가가 왜 가위 들고, 자 들고 설치냐는 거죠. 찰찰할수록 민생이 피폐해지고 불만이 높아질 밖에요. 도에서는 점점 멀어지고요.
이런 것들이 도로 돌아감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즉시 도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런 것들을 가지 치듯 쳐낼 수 있어야 하는 거지요. 다른 말로 무위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요. 또 다른 말로 덕을 쌓아야 하는 건데요. 한 번으로 안 되고 거듭거듭 쌓음으로, 반복훈련으로 점차점차 도에 가까워져 가는 건데요, 이게 완전히 될 때 비로소 한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생긴다는 건데요, 내일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59 장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데
검약과 절제보다 좋은 것이 없다
오직 그렇게 할 때
일찌감치 도에 돌아갈 수 있다
일찌감치 도에 돌아감이 곧 덕을 쌓는 것이다.
덕을 거듭 쌓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하지 못할 일이 없으면
한계에 이르지 않는다
그 정도가 되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
나라를 지킬 정도의 도를 지닌다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럴 때 뿌리가 깊고 튼튼하여
장구하게 살고 오래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