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무위,사무사,미무미

하루보듬 도덕경(63/1장)

by 신아연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4월 마지막 주입니다. 한 것도 없는데 한 주가, 한 달이, 한 해가 저 혼자 막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하루인 것만 같습니다. 한 순간인 것만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날들이 그저 책 한 페이지 넘긴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도덕경 여정도 오늘로 63장에 이르렀네요. 63장은 노자 특유의 반어적 표현과 함축성을 발휘하며 그 알쏭달쏭함을 더하고 있는데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류의 말을 묘하게 하고 있는 거지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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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작가의 '심상'



함이 없는 것으로 행하고

일이 없는 것으로 일하며

맛이 없는 것으로 맛을 삼는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여기며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은 그것이 쉬울 때 하고

큰 일은 그것이 작을 때 하라.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비롯되고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비롯된다.


성인은 끝내 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 일을 이룬다.


쉽게 승낙하면 반드시 신뢰가 적고

쉽게 생각하면 반드시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모든 일을 어렵게 여기니

끝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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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ajob, 출처 Unsplash


어떤가요? 알 듯 모를 듯 하지요?

오늘은 첫 구절, 위무위(爲無爲) 사무사(事無事) 미무미(味無味)만 보겠습니다.


위무위(爲無爲), 함이 없는 함에 대해서는 그만 말하겠습니다. 도덕경 전체의 주제가 이 말이니까요. 자연의 모습, 계절의 변화가 함이 없는 함의 주자 격에 속하지요. 억지로 하지 않았는데 언제 보니 그렇게 되어있더라는 거죠. 매사 이 원리를 적용하면 일은 저절로 되어 갈 테지만 말이 쉽지요. 막상 무슨 일이 딱 닥치면 안달복달, 노심초사, 불안초조 생 난리죠. 저만 그런가요? ㅎ


사무사(事無事), 이 말도 위무위와 크게 다르지 않지요. '일을 벌이지 않고 일을 한다, 일을 일 삼아 하지 않는다'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저의 글쓰기를 들어 말하자면, 저는 하루 평균 200자 원고지 10매 분량의 글을 씁니다. 시간으로는 한 시간 정도 걸리지요. 하루 한 시간 글쓰기, 일로 만들지 않고 있다는 의미죠. 24시간 중에 한 시간은 별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한 달이면 300매요, 한 해면 3600매 분량이죠. 책으로 계산하면 4, 5권에 해당합니다. 안 한 듯 하지만 되어 있는 거지요.


미무미(味無味), 맛이 없는 것으로 맛을 삼는다? 무슨 뜻일까요? 맛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맛의 무위'인 거지요. 미식가를 자처하거나 맛집 찾아다니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실상 맛이란 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 고프면 뭔들 맛이 없고, 배부르면 산해진미도 물리는 법이니까요.


제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던 10년 전, 1년 동안 천 원짜리 김밥만 먹었습니다. 천 원짜리 김밥이 어딨냐고요? 제가 사는 동네에는 있었어요. 그걸 맛으로 먹었겠습니까. 살아야 하니까 먹었지요. 지금이야 일정한 원고료가 들어오니 그 정도는 면했지요. 그런데 엊저녁에 모처럼 김밥을 한 줄 먹는데 맛있는 거에요. 천 원짜리가 2500원이 되었지만. 값이 문제가 아니라 같은 김밥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더라는 거죠.


제가 이래 뵈도 (먹고 싶다면) 8코스 프랑스 요리를 매일 먹을 수 있던 사람이었어요. 호주 시드니에서 저희 집이 프랑스 레스토랑을 했으니까요.^^ 전처럼 잘 먹는 거에 집착했으면 지금 저는 이만큼도 못 살았을 테지요. '미무미'했기 때문에 그 세월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던 사도 바울처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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