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쩔면 영이 된다네

목요영혼의 PT(5)

by 신아연


지난 번 글에 '스위스 금고를 여는 법'이라고 제목을 달아서인지 퇴임 형사 한 분이 새 독자가 되셨어요. 뭔가 범죄 냄새를 맡으셨나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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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영의 지배를 받는 걸까요? 혼의 동력일까요? 다시 한 번 영과 혼을 구분하자면 혼은 '정신, 마음, 실천'이지요. 생각과 판단, 희노애락, 결정과 실행, 이렇게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 작용입니다. 반면 영은 혼에게 영양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영역입니다. 수돗물의 급수원 같은 곳이죠.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 아리수죠.


혼이 소프트 웨어라면 영은 하드 웨어, 본체입니다. 혼이 가정집 형광등이라면 영은 한국전력입니다. 그렇다면 아리수나 한국전력은 누가 세웠을까요? 즉, 영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선 영은 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합니다. 마음 최중심에 똬리를 틉니다. 마음의 본부가 되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마음의 조종자가 됩니다. 마음 지배꾼이죠.


마음이 동할 때 감정과 행동이 일어납니다. 가령 마음이 꿀꿀하면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그래서 헤어진 그 사람의 전화 번호를 기어코 누르게 되는 것이죠. 그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면 다른 감정, 다른 행동이 나왔겠지요. 즉, 영이 강했더라면 괜히 전화해서 채인 데 또 채이고, 까인 데 또 까이는 쪽팔림을 겪지 않았겠지요.


인형극처럼, 언뜻 보면 인형이 의지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사람이 위에서 잡아당기는 대로 손발이 흐느적대는 꼭두각시이듯이 혼도 그렇습니다.


물론 혼이 전적으로 영의 꼭두각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내 판단, 내 의지의 영역이 있긴 있지만 제한적이란 거죠. 계란을 껍질(육), 흰자(혼), 노른자(영)로 구분했던 것 기억나시죠? 계란을 깨뜨려 섞으면 흰자는 결국 노른자로 덧입히는 것과 같은 거죠.


그렇다면 그 영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혼은 어쨌거나 내가 자각할 수 있고 뇌작용으로 환원시킬 수도 있지만, 영은 도대체 언제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자리잡게 되었을까요?


성경에 '하루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가 싸웠어도 한 이불 덮고 자라는 말과 통하지요. 한 두번 화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화가 다져지고 굳어지면 소위 말하는 분노조절장애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밤새도록 화를 품지 말라는 겁니다. 곱씹고 되새기면 영적 영역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니까요.

화 내는 것이 혼적 문제라면 분노는 영적 문제입니다. 혼이 '쩔면' 영이 됩니다. 마음에 각인되고, 되풀이 하여 습관이 되고, 업식이 되고, 정신의 DNA가 된 것, 그것이 영입니다. 혼이 숙성되고 발효된 것이 영입니다.


그렇다면 내게는 어떤 영이 존재하고 있을까요? 내 혼의 어떤 부분이 '쩔어'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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