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0/3장)
70장 이어서 하겠습니다.
나를 아는 자 드물고
나를 따르는 자 귀하다
여기서 '나'는 누구입니까. '노자'라고 해도 좋고, '도'라고 해도 좋고, 도를 따라 살아가는 '참나, 거듭난 나'라고 해도 좋겠지요. 도를 따라, 진리를 따라 살면 참 쉬운데, 노자 말씀을 알아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그게 곧 제대로 잘 사는 건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지, 솔직히 거의 없다는 것을 노자도 알고, 도도 안다 이 뜻인 거지요.
그러기에 성인은
베옷을 걸쳤지만
속에는 옥을 품고 있다.
우리 주변에 성인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가 서울역 노숙자라는 거지요. 소크라테스의 입성이나 몰골에 비하면 요즘 노숙자들은 양반 중 양반일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노숙하는 철학자를 찾아볼 생각도 않잖아요. 평생 토관에 살았다는 디오게네스도 속에는 옥을 품고 겉에는 베옷을 걸친, 아니 아예 벗은 '노숙성인'입니다. 알렉산더가 찾아와서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아무것도 필요없으니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서 달라던 말로 유명해졌지요.
성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진리를 아는 사람이죠. 성경 버전으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죠. 그러다보면 입성이 꾀죄죄해 질까요? 거친 베옷을 걸치게 될까요? 궁기가 흐를까요? 그건 아니죠. 삶의 질서로 인해 오히려 윤기가 흐를 테지요. 그의 나라, 즉 하늘의 도리를 따라 살면 지상의 일이 잘 풀려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질서상 명백합니다. 영의 일을 잘 돌보면, 영권 아래 있는 혼의 일도 저절로 정돈이 되고, 혼의 지배를 받는 육의 일도 잘 됩니다. 집안의 가장처럼 인생의 가장은 영인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볼게요. 일이 작심삼일이 되는 것은 혼이 저 혼자 뭘 해보겠다고 설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결심, 마인드 컨트롤'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해봐서 알잖아요. 방학 때 생활계획표 안 짜 본 사람인나요? 그대로 실천이 되던가요, 어디?
무슨 일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영의 힘이 뒷배가 돼줘야 합니다. '마음 먹기'에 달린 게 아니라 '영 먹기'에 달린 거지요.
제가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혼의 힘이 아니라 영의 힘에 의해서 입니다. 혼으로야 기분과 감정에 따라 쓰기 싫은 날도 있고, 글 따위 아예 관둬버리고 싶은 날이 왜 없겠습니까. 글 안 쓴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영은 꿈쩍도 않지요. 기분이나 감정, 다른 말로 혼의 유혹에 흔들리는 법이 없지요. 영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을 때까진. 혼적인 제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제 안의 영적 원리가 그렇게 작동하는 겁니다.
또, 육이 혼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은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게 한 예가 될테지요. 정신이 똑바르면 육체적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소위 정신력이라고 하는. 그리고 그 정신은 영적 에너지로 지탱됩니다. 결론적으로 영이 강건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쩐다고요? 그렇게 안 산다는 거지요. 진리에는 관심없고, 다른 말로 영적 일은 아예 차단하고, 육적으로 아등바등한다는 거죠. 그 에너지를 혼에서 끌어대며. 그런데 그 혼적 에너지는 충전기 없는 밧데리와 같아서 당장은 '만땅'으로 채워져 있어도 곧 고갈되어 버리죠.
이야기가 너무 번졌네요. 내일 '영혼의 피티' 시간에 해야할 말을 오늘 해 버렸네요.^^
70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양승국 /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
제 70 장
내 말은 알기도 참 쉽고
실천하기도 쉽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 못하고
실천도 못한다.
말에는 근본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기에
나를 알지 못한다.
나를 아는 자 드물고
나를 따르는 자 귀하다
그러기에 성인은
베옷을 걸쳤지만
속에는 옥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