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명품 영은?

영혼의 PT(12)

by 신아연


PT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전에 말씀드린대로 노자가 끝나면 주 1회에서 2회로 PT를 늘이려고 합니다. 주 2회는 혼성(지성)을, 2회는 영성을 훈련하는 거지요.


소소한 새벽밥을 지으며 지성이니 영성이니 거창한 메뉴를 걸었지만 솔직히 제가 알면 뭘 알겠습니까. 호주교민신문 기자로 몇 년 일한 것 외엔 평생 가정주부로 살다가 기껏 10년 책 좀 읽은 것 가지고 설익은 소리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거지요. ‘영혼의 밥집’이라도 열지 않으면 거의 고립이니까요.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소통방식이 각기 다를 뿐. 법정스님도 글로써 ‘오두막 통신’을 끊임없이 타전했고, 이해인 수녀도 세속 사람에게 더 유명하죠. 딱히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좋은 말을 해 줘야겠다는 의도보다 우선 본인들이 살려고 그렇게 한(하는)거지요. 제가 두 분과 비스므리하게 살다보니 아마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고 보면 몸이 어디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도 그런 뜻 아닌가요? 몸은 떠났어도 그의 정신, 마음, 의지, 향기는 그대로 머물죠. 떠난 자의 ‘이름’이란 그의 생시 내면세계를 빻아 담은 정신적 유골함 같은 거겠지요.


저도 몸은 비록 5,6평 남짓 공간에 있지만, 아, 이 말을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네요.


김진홍 목사님이 감옥에 계실 땐데 2평 방에 9명이 수감되어 있었더래요. 앉아 있기가 버거워 최대한 몸을 말고 견디지만 더 심각한 상황은 잠잘 때였다고 합니다.


감방장이 “오늘은 오른쪽!”하고 명령하면 모두 오른쪽 어깨를 바닥에 대고 취침을 했다네요. 똑바로 누울 공간이 도저히 안 되니까요. 그 다음 날은 “왼쪽!”이랬대요. 그렇게 책꽂이에 꽂힌 책처럼, 칼집의 칼처럼 모로 누워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중에 소변이라도 보고 오면 그만 자던 자리가 없어진다고 해요. 워낙 비좁으니 한 사람이 빠져나간 간격이 저절로 메워지는 거지요.


저도 지난 8년간 비슷한 크기의 공간에 살았지만 혼자 '널널히' 지냈으니 9명 수감자들에 비하면 청와대 생활이었네요. 그랬던 제가 지금은 두 배나 넓은 곳에 사니까 백악관에라도 들어온 기분입니다. 백악관이 청와대보다 더 넓은진 모르지만.


이 말을 왜 하고 있지요, 제가 지금? 아, 몸이 어디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던 중이었지요. 몸이 어디에 있건, 묶여있든 매여있든 정신은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혼이 몸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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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영은? 몸의 상황과는 완전히 무관하고 혼적 상태와도 거의 상관없지요.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보세요. 내일 사형이 집행될 사람이 천하태평으로 쿨쿨 자고 있잖아요. 여북하면 빼내 주러 온 천사가 옆구리를 발로 차서 깨웠겠습니까.


영 PT의 최고 단계는 '베드로처럼 되기' 입니다. 우리 중에 이 경지에 도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극상을 말씀드릴 수는 있지요. 비록 구매력이 없어도 명품샵에서 최고가의 명품을 구경할 수는 있듯이요.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02] 목요영혼의 PT(12) 최고 명품 영은?|작성자 자생한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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