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4/2장)
이어서 보겠습니다. 어제 어떻게 끝났지요? 사형제도가 있고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흉악 범죄가 줄어들 것인가? 아니라고 했지요.
이어 노자는 사람 죽이는 일은 국가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냐며. '누군 누구야? 옛날 같으면 망나니고, 요즘 같으면 교도소 말단 직원이 하지.', 설마 이렇게 생각하는 분은 우리 독자 중에는 안 계시겠지요?
그 사람들이야 사법체계의 명령대로 움직인 것뿐이니까요. 그게 직업인 거죠. 예수님 처형 때를 보세요. '본디오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지, 현장에서 예수님을 매단 사람 이름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본디오 빌라도는 당시 최고 통치자였지요. 우리가 "김대중 정부 직전에 마지막 사형이 있었다." 이렇게 대통령 이름을 걸고 말하듯이.
전흥수 작가의 '태화산에 오르니'
죽이는 일은 항상
그 일을 맡은 자가 하는 법이니
누가 그를 대신하여 죽인다면
이는 마치
큰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것과 같다
큰 목수를 대신해서 나무를 깎는 사람치고
그 손을 다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죽이는 것은 누가 한다고요? 네, 큰 목수가 할 일이지요. 큰 목수가 누굽니까? 하늘이지요. 도(道)지요. 생명을 낸 이지요.
성경의 하나님도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복수'라는 말은 매우 인간적인 언어입니다만,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안다, 그걸 '내가' 대신 해 주겠다는 말씀인 거지요. 피를 묻혀도 내가 묻힌다. 내 손에 묻힌다. 안 그러면 네가 다친다. 네 손을 다친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모태 목수'인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 같아요. 노자도 목수를 상징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니까요. 예수는 그야말로 큰 목수!
제가 오래 전 읽은 어느 일본 소설에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주인공의 유족들이 범인을 사형시켜 줄 것을 간절히 요구하며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는 없으니까요."라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저는 이 말을 사형이 답은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실상 그렇게 한다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뜻 아닌가요? 사형에 처한다 한들 또 하나의 목숨만 앗는 거지요.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우리 사회에 처음 '실체'로 알린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감옥에서 만난 어느 목사가 말하길, 유영철이 "무서워서 성경을 못 펼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고 왔대요. "너는 앞으로 많이 울어야겠다. 하나님 앞에서 많이 울어라." 그에게서 회개의 기미를 봤다는 의미겠지요.
'큰 목수'가 손을 대기 시작한 걸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유영철이 쇼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큰 목수를 자처하고 그를 죽이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겠지요. 왜냐하면 '큰 목수를 대신해서 나무를 깎는 사람치고 그 손을 다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요.
'큰 목수'는 정확한 때에, 정확하게 개입할 것입니다. 설혹 죽인다 해도 보복의 원리로 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연이, 스러진 여름이 찾아 든 가을에게 복수 당했다고 하지 않듯이. 큰 목수와 우리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흥수
제 74 장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으로 겁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한 후
나쁜 짓을 하는 자마다 잡아 죽인다면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하겠는가?
죽이는 일은 항상
그 일을 맡은 자가 하는 법이니
누가 그를 대신하여 죽인다면
이는 마치
큰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것과 같다
큰 목수를 대신해서 나무를 깎는 사람치고
그 손을 다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