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는 아무나 하나?

하루보듬 도덕경(74/3장)

by 신아연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새삼 문안드리는 이유는 제가 자정 조금 지나 잠이 깨서 다시 잠자리에 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잘 주무셨나 하고요.


책을 새로 내면 홍보와 축하 자리를 겸해 한 동안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오롯이 혼자 지내는 게 10년 습관이 된 터라 사람을 만나고 오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어서 요즘은 저녁 밥 숟가락만 놓으면 잠이 드는 거에요. 하던 짓만 해야지 원.^^ 어차피 수면은 4, 5시간 정도니까 9시 전에 잠들면 자정에도 깨고 그러지요.


74장, 진도는 어제 끝났고 오늘은 잡소리를 좀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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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변호사


고전은 오늘에 되살리지 않으면 그야말로 '공자 왈, 맹자 왈'이 되지요. 요즘 버전으로 말하면 '라떼는~'이 된단 말입니다. 내 삶에, 내 일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군내나고 케케묵은, 박제된 쉰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지금 여기'에 끌어들이려고 소처럼 이리 되씹고, 말똥구리 마냥 저리 궁글리고 하는 거지요. 애초 제가 고전을, 그것도 동양고전을 접하게 된 것도 나 살자는 게 시발이었으니까요.


외롭지 돈 없지 미래 없지 나이만 많지, 그래서 두렵지 막막하지 절망되지 걱정만 많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서 붙잡은 게 노자, 장자였습니다. 구색 맞춰 공자, 맹자도 읽었고요.


서양고전은 신토불이가 아니라서 우리 체질에는 안 맞아요. 제가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해서 압니다. 이 사람들은 논리를 갖고 놀지요. 이성적 사유 유희를 즐기는 거지요. '철학'이란 말이 그래서 생긴 겁니다. 동양에는 애초 '철학'이란 말이 없었지요. '동양철학'이란 말은 '서양철학'이란 말에서 따와서 일본사람들이 붙인 거지요. 학문적으로만 말하면 동양철학은 신흥학문입니다.


동양에는 철학이란 '말'은 없었지만 철학적 '삶'은 있었지요. 삶이 곧 철학이었던 거지요. 논리 놀음이 아닌 현실적 과제에 직결되어 있었단 뜻입니다. 따라서 노자는 74장에서 그 당시 현실을 개탄하며 도인으로서 쓴소리를 하신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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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폭정과 악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이 죽지 못해 사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죽음을 무릅쓰고 민중봉기 등 반정부 시위를 벌이게 되거늘, 이때 백성들을 더 옥죄고 감옥에 잡아들여 사형에 처한다면 무슨 징벌 효과가 있겠냐는 것이죠. 애초 정치를 개떡같이 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는, 살겠다고 버둥대는 백성을 벌 준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겁니다.


그저 등따숩고 배부르게, 없는 듯 다스리면 선량하게 살아갈 백성들을 생계형 범죄자로 몰아 잡아죽이는 것이 도대체 누구에게 부여받은 권리냐는 게 노자의 질타입니다.


이것이 74장의 본래 뜻입니다. 그것을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적용하여 제 나름으로 풀어 본 거고요.


74장에서 함께 생각해 볼 또 다른 것은 사형이 갖는 생명에 대한 부자연스러움입니다. 사형은 인위로 생명을 끊는 행위지요.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되었는데 저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살해 피해자 유족들이 들으면 격분할 수도 있겠지만, 사형은 '제도적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살인이 또 하나의 살인을 부르는 거지요.


생명을 끊는 부자연스러움을 말하자면 안락사도 해당됩니다. 우리 자생서당 가족들이 제 책『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구매한 후 인증샷을 보내오시고, 속속 피드백도 주시는데요, 이 무거운 주제를, 생각하기에 따라 이 무서운 주제를 여러분들과 나눠 지는 것만으로도 저는 한짐을 던 느낌입니다.


지난 1년 간, 저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고인을 존중하면서도 고인의 선택은 거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저를 짓눌렀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처럼, 안락사는 밉지만 안락사를 택한 고인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분이었으니까요.


안락사가 그 어떤 죽음보다 왜 무겁습니까. 바로 반생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낸 후 저는 벌써 안락사 지지자들로부터 안티를 당하고 있습니다. 책도 안 읽어보고선, 안 봐도 뻔하다는 둥 제가 거길 다녀온 후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그 또한 제 몫이라면 지고 가겠습니다. 안락사 현장을 직접 보고 온 사람으로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안락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아세요? 안락사는 어떤 사람이 하는 줄 아세요? 제 책을 일단 읽어보신 후 다시 이야기하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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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저자신아연출판책과나무발매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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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4 장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으로 겁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한 후


나쁜 짓을 하는 자마다 잡아 죽인다면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하겠는가?



죽이는 일은 항상


그 일을 맡은 자가 하는 법이니


누가 그를 대신하여 죽인다면


이는 마치


큰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것과 같다


큰 목수를 대신해서 나무를 깎는 사람치고


그 손을 다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09] 하루보듬 도덕경(74/3장) 사형 그리고 안락사|작성자 자생한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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