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PT(16)
영혼의 PT 시작합니다. 말씀드렸듯이 도덕경을 마치면 (6주 남았지요) 영혼의 PT를 주 2회로 늘릴 예정입니다. 지난 시간에 언급했던 고 이병철 회장의 임종 전 마지막 24질문도 다뤄볼까 합니다. 이미 종교계의 저명하신 분들이 답을 했지만 저는 제 나름의 답을 해 보고 싶습니다.
굳이 왜 그래야 하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처음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종교와 영성에 관한 독자들의 질문이 있었고, 그 질문들을 모아보자면 결국 돌아가신 이 회장의 질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절박함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선 그 밑작업으로 영과 혼을 구분하는 것을 좀 더 해 보지요. 영과 혼이 어떻게 다른지,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간할 수 있으면 답은 의외로 쉽게 찾아질 것입니다. 갈 길도 멀지만 시간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전 생애에 걸친 길이니까요.
저는『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을 내고 처음으로 울타리 없는 세상 들판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간 11권의 책을 냈지만 한, 두권 빼고는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판 남모르는 사람에게서 평가를 받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무명작가의 태평성대를 누렸지요.^^
더구나 그 글을 쓰는 도중에 '예수님과 재혼'을 하는 바람에 책에 그 내용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고 그 부분을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 할 거라는 것도 예상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서서히 안티 리뷰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저 역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자세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삶에 정직하십니까? 정직할 수만 있다면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 특히 죽음의 문제에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정직이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변명 않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약하고 두렵고 불안해 하고, 욕심 많고 이기적이며, 의존적이고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정직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혼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제가 '정직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정직함'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합니다. 감추고 있다가 들킬 게 거의 없으니까요. 미처 몰랐던 것이 있었다면 남이 지적해 줄 때 고치면 되니까요. 자동차를 운전할 때처럼 누구나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재열
죽음 앞에서는 정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죽음의 본래적 속성입니다. 죽음이 진정 두려운 이유는 그 속성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 정직은 살아 있을 때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죽음은 남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극적이었다 해도 제 눈 앞에서 안락사를 하신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죽음은 오직 나의 정직으로 완성됩니다.
내 속에 얼마나 추한 것이 많은지 그것을 직면하며 날마다 회개하는 용기, 그것 외에는 달리 정직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영성입니다.
혼은 거꾸로지요. 내 안의 추함을 어떻게든 덮고, 외면하고, '나만 그런가? 세상 사람 다 그러고 사는데, 뭐' 하면서 물타기 하고, 심지어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러고 있는 줄도 모르는, 그게 혼이 하는 일이지요. 혼은 '자가 쉴드'를 치느라 노상 바쁩니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17] 목요영혼의 PT(16) 영의 일과 혼의 일|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