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이야기를 들으면 이쪽이 맞는 것 같고, 저쪽에 귀기울이면 저쪽이 옳은 것 같아요."
"어느 쪽이 되었건 정말 많이 고민한 후 결정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존엄자살을 하는 인간을 애처롭게, 맘 아프게 보시지 괘씸하게 여기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 내 가족의 문제로 놓고 생각할 때 정말 조력사를 택하게 둘 수 있을까요?..."
"죽음은 내 선택권 내에 있어야 합니다.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이명진 회장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윤성, 이명진 두 분의 설득으로는 양측 모두 설득이 안 될 것 같은데요. 좀 더 설득력있는 분들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어제 조력사 찬반 토론 방송 이후 제 독자들과도 댓글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은 여간해선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비록 제가 반대편에서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지만 제 힘으로 찬성하는 쪽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제 마음을 돌릴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건 아셨으면 합니다. 내 마음을 돌릴 수 없다해도 상대편 마음에 충분히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이 말은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더구나 이 문제는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첫날 올린 유튜브 동영상에 달린 3500개 가까운 댓글은 "본인이 아파봐라. 그러고도 안락사하지 말자는 소리가 나오나."로 압축됩니다. 그 마음 백 번도 천 번도 이해합니다. 감기 정도만 걸려도, 손톱 밑에 가시만 박혀도, 어쩌다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기만 해도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우리잖아요. 하물며 불치병의 고통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 내 감정만 가지고 반대 의견을 묵살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력사 반대자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에, 자신은 생전 안 아플 인조인간이라서, 남의 고통에 전혀 공감할 수 없어서 입법화를 반대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내고 가장 고마움을 느낄 때는 "안락사를 찬성했던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을 돌렸다." "내 죽음은 내가 선택해도 된다는 생각에 금이 갔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독자 피드백을 받을 때입니다. 제가 글을 잘 써서 일까요? 그렇지 않지요. 읽는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읽었기 때문이지요.
제 독자를 포함,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준 jtbc 방송사에 감사를 표하는 댓글 또한 많았습니다. "존엄한 죽음 VS 방조된 자살"이 우리 사회의 본격적 조력사 토론의 유용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19금 판정을 받아 유튜브 상에서는 접속이 까다롭게 되어 가파르게 올라가던 조회수가 87만 대에서 멈춘 상태라는 점입니다. 특히 외국에서는 접속 자체가 안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카페나 온라인 모임 등에 조력사 토론 자료로 사용코자 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jtbc 뉴스룸을 통해 이건 바로 열립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328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