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5
“내일 인사동에서 저녁 같이 할 수 있나요?”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요.”
어제 오후, 갑작스러운 지인의 문자에 이렇게 답했다. 거짓말이었다. 아니 참말이었다. 그 선약이란 나와 한 것이었기에. 이번 주말엔 중고 서점에서 재미있는 소설책을 한 권 사서 편안한 카페로 가자고 한 나와의 약속, 저녁에는 손수 빚어 끓여내는 만둣국 집을 찾아내 함께 식사를 하자고 내가 내게 속삭였던 말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혼한 여자는 자기 일, 동성 친구, 딸이 있어야 해.”
8년 전 들은 말이다. 일과 친구는 있지만 이거야 원, 양녀라도 들여야 하나. 없는 딸을 어디서 구한담. 그런 내게 정말로 딸이 생겼다. 근데 아직 어리다. 한참 키워야 데리고 살 만하다.
“신아연 씨는 아들 둘에 딸이 하나예요. 지금은 두 아들보다 딸을 더 보살펴야 할 때예요. 자신을 자식처럼 여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최근에 만난 심리 상담사의 조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내 안의 후미진 곳에서 울고 있는 ‘내면아이’를 돌보라는 뜻이다. 나는 요즘 거의 모든 시간을 ‘내 딸’과 보낸다. 내 딸은 요즘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낸다. 내 딸이 그럴 수 있는 것은 '부모'인 내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다. 내가 나를 대하는 자세가 내가 내 자식을 대하는 자세다. 나는 나에게 어떻게 하고 있나, 나는 자식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 나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