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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은 왜 만났을까

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6

by 신아연


"갤러리 대표가 제 작품을 보더니 자신을 좀 더 사랑해 보라고 하더라구요.”

“어떻게 하는 게 나를 사랑하는 걸까요?”

“자기연민과 자기사랑의 차이는 뭘까요?”


'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5, <자신을 자식처럼>을 읽고 여러분이 ‘자기사랑’에 대한 말씀을 나눠주셨다. 난들 똑 부러진 답을 가지고 있을 리 있나. 나를 전보다 사랑하게 된 것은 확실한데 내가 내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 줬는지를 말로 표현하려니 여전히 막연하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은 말할 수 있겠다. 어딘가 더 나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 나, 있었으면 하는 나, 바라는 나, 바람직한 나에 대한 환상과 욕망이 줄어들고, 과대망상과 의기소침 대신 나의 현 위치, 현 상태, 현 좌표에 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가 있다. 애당초 토끼와 거북이는 왜 만났을까. 물에 사는 거북이와 뭍에 사는 토끼가 말을 섞는 것도 황당한데, 둘이서 경주를 하는 것은 무모함의 극치다. 마음이 공허한 거북이를 꾀어내는 불량 토끼나,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욕구불만 거북이의 모습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가토 다이조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참조


거북에 패한 토끼는 토끼계에 전대미문의 치욕을 남기고, 토끼를 이긴 거북은 가문의 영광을 넘어 종(種)에 영광을 안기지만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거북이라면 애초에 토끼를 만나지도, 겨루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거북이는 거북이로 만족할 뿐, 토끼가 되려 하지 않을 것이기에.

토끼와_거북.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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