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7
“인생 뭐 있나요?”
얼마 전 지인이 말 끝을 이렇게 맺었다.
‘인생 뭐 있냐니. 있고말고. 인생이 중하지 않으면 뭐가 중헌디?’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사람들의 언어에 필요이상으로 민감하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말에 매인다. 직업병인 것 같다. ‘인생 뭐 있냐’고 한 사람도 ‘인생 뭐 없다’는 뜻으로 말했을 리가 있나. 그럼에도 그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몇 번 들었다. 이른바 100세 시대에 살면서 이제 겨우 중턱 쯤에서 ‘인생 뭐 있냐’가 입버릇이 되었다면, 말로만 그러는 건 아닌 것도 같다.
인생 뭐 있나요? 맛집이나 찾아다니는 거지.
인생 뭐 있나요? 여행이나 갈 수 있으면 좋겠네.
인생 뭐 있나요? 사고 싶은 거 살 때 제일 신나지.
인생 뭐 있나요? 운동해서 건강한 게 최고지.
인생 뭐 있나요?( ).
각자 괄호를 채워본다면? 거의가 감각적이며 물질적인 내용이 아닐까. 운동과 건강은 그렇지 않다고? 하드웨어만 멀쩡하면 뭐하나. 소프트웨어가 빈약하기 그지없는데.
100세 시대의 아이콘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를 꼽는다.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줄 때 삶이 의미 있고 소중해 진다는 것을 100년을 살아본 오롯한 체험이 말한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쓴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라면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간단하고 단순한 목적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이룰 수 있는 궁극의 목적을.” 공허하고 무력한 우리의 100세 시대, 두 분의 말씀 속에 길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