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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 전 물고기

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8

by 신아연


내게는 소소한 것을 챙겨주는 친구가 있다. 어제는 모처럼 그 친구를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견과류 봉지를 내민다. 누룽지, 보리쌀, 콩, 우산, 펜, 메모지 심지어 안경 닦는 크리너까지. 매번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그리고는 밥을 사고 커피를 산다. 가난한 글쟁이에 대한 세심한 배려인 것이다.


따듯한 마음으로 집에 오는 길, 장자가 생각났다.

배가 고픈 장자가 어느 날 제후에게 양식을 얻으러 갔다.


“좋습니다. 머지않아 세금을 거두게 되니 그때 거금을 빌려드리리다.”


밉살스런 제후의 말을 아래와 같이 맞받아치는 장자. 가히 천생 이야기꾼답다.



“오는 길에 누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기에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 안에서 붕어가 숨을 헐떡이고 있습디다. 그러면서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로 나를 좀 살려주시오.’ 이렇게 애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좋다, 내가 이제 남쪽으로 가서 오나라와 월나라 왕을 설득하여 서강의 물을 끌어다가 너를 맞이하러 가마.’ 그러자 붕어가 화를 벌컥 내며 ‘나는 늘 함께 있던 물을 잃어서 이렇게 숨이 가쁜 것이요. 적은 양의 물만 있으면 수레바퀴에 패인 땅을 메워 바로 살 수 있는데 지금 당신은 국경에서 물을 끌어오네 마네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머잖아 차라리 건어물 전에서 나를 찾는 것이 나을 것이오.’ 이러더란 말입니다.”


배고픔을 덜어주는 한줌의 온정과, 자신의 처지에 공감을 받을 때 사람은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내 곁에는 그런 지인들이 여럿 있다. 지금까지 내가 ‘건어물 전 물고기’ 신세가 되지 않은 것도 모두 그분들 덕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곁의 누군가를 건어물 전에 내다걸진 않았는지...


신아연 인문에세이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중에서

[신아연]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_입체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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