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수업 2
어느 새 또 목요일이네요.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머리서랍'을 뒤적여 봅니다. 제 머릿속은 한약방 서랍처럼 총총히 나눠져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야기꾼이었지요. '천생글쟁이' 이전에 '천생말쟁이'였던 거죠. 남 눈엔 암 것도 아닌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도 제 입을 통하면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천성적으로 말하는 방식을 알았던 것 같아요. 어떤 말을 먼저 하고, 무슨 말을 나중에 할지, 어디에 어떻게 여운을 남기며, 어느 대목에서 궁금증을 유발시킬지, 타임밤(timebomb)을 설치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되, 듣는 사람의 피로감을 감안하여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할지 등 총체적, 직관적으로 소설 기법을 구사하는 거지요.
그런 제가 가장 나중에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이 무언지 아세요? 바로 유언(장)입니다.
저는 올해 초에 이미 유언장을 썼습니다. 두 아들에게 각각 한 통씩. 써서 친구 두 명에게 보냈지요.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혹시 죽으면 호주 아들들에게 좀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제 책상 유리 밑에도 한 부 넣어두었는데, 유언장은 손 글씨로 쓰는 게 좋다고 하길래 육필로 다시 쓰려고 합니다. 다시 쓰게 되면 좀 더 잘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써보니 세상 어려운 글이 유언장이더라구요. 천생말쟁이, 글쟁이가 무소용이더라구요. 왜냐면 그저 진실해야 하니까요. 오늘 내가 죽는데 마음이, 글이 더 이상 무슨 치장을 하겠습니까. 소설기법으로 쓸 필요는 더더욱 없고요.
유언장은 썼지만 삶의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살아있어서 좋다는 느낌은 연애할 때 말고는 없었는데, 나이 들수록 살아있는 자체를 좋아하게 된다네요. 근데 저는 그렇지는 않네요.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살아있는 게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아직 덜 나이들어서 그럴까요? 2020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루이즈 글릭은 시 '애도'에서 살아있음의 좋음을 이토록 애닮게 표현했건만.
애도
루이즈 글릭
당신이 갑자기 죽은 후
그동안
전혀 의견일치가 되지 않던 친구들이
당신의 사람됨에 대해 동의한다
실내에 모인 가수들이 예행연습을 하듯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신은 공정하고 친절했으며,
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박자나 화음은 맞지 않지만
그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실하다
다행히 당신은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포에 사로잡힐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조문객들이 눈물을 닦으며
줄지어 나가기 시작하면,
왜냐하면 그런 날에는
전통 의식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9월의 늦은 오후인데도
햇빛이 놀랍도록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그때
당신은 갑자기
고통스러울 만큼
격렬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살아있는 당신의 친구들은
서로 포옹하며
길에 서서 잠시 얘기를 주고받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저녁 산들바람이
여인들의 스카프를 헝클어뜨린다
이것이, 바로 이것이
‘운 좋은 삶’의 의미이므로,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므로
/ 류시화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