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한 뿌리의 구원

예수동행일기(4)

by 신아연


"예전 내 처지와 같아서 많이 공감했어. 네가 중학교 마지막 등록금을 내 준 덕분에 내가 건어물전 물고기를 면할 수 있었으니... 나는 그때 꼭 수레바퀴 자국에 빠진 신세였는데 네가 한 바가지 물로 메워 준 거지. 정말 고마웠어. 오늘 네 글을 읽으니 그때가 생각나네."



어제 글, 장자의 학철부어에 친구가 이런 댓글을 보내왔다. 10대 때 별 생각없이 한 행동이 45년이 지나 이런 말로 돌아올 줄이야!



중3 때 친구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시면서 가정 형편 상 도저히 중학교를 졸업 못하게 생겼을 때 내가 저금을 헐어 그 친구의 마지막 학비를 내 준 적이 있다. 친구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단 졸업은 하게 됐지만, 더는 학교에 올 수 없었다. 학교 대신 아버지 친구 분이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에 출근해야 했기에. 친구는 자신의 졸업장과 앨범을 내가 대신 받아 전해줬다며, 그걸 또 그렇게 고마워했는데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무슨 크게 잘하거나 생색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내 기억의 창고에서 밀어낸 때문인 것 같다.



친구는 그후 맞벌이 하는 친척집에서 꼬마들을 돌봐 주는 조건으로 집을 떠나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영등포에 있는 방적회사에 취직, 두 살 아래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오롯이 책임졌다. 월급을 또 쪼개 간간히 오빠도 도우며. 착하고, 책임감 있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두 딸을 다 키워 놓고, 방송대 유아교육과에 진학,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다. 불타듯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 후 최근까지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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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cHnm, 출처 Pixabay


지난 달 그 친구를 거의 40년 만에 만났다. 그나마 내가 글을 쓰니 친구가 인터넷으로 나를 찾을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내 책을 전부 사 준 것만도 고마운데, 그날 친구는 내게 고급 머플러를 선물하고 밥을 사며 위와 같이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항상 너를 생각해 왔어. 지금까지 살면서 고마운 사람을 꼽으라면 네가 항상 첫째였어. 그리고 늘 보고 싶었고. 막연히 너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지. 분명 선하고 착한 모습일 거라고. 그리고 이번에 만났을 때 그 선함을 확인했지. 정말 고맙다, 내 친구 아연아."



친구는 학철부어의 댓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나는 이런 답신을 보냈다.



"그날 너의 이야기를 듣는데 얼마나 부끄럽던지.. 난 너에 비하면 형편이 나은 편이었지만 감사한 줄 모르고 살다가 지금 이런 시련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선한 사람은 너야. 그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 자신이 아닌 동생을 대학에 보냈으니 너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넘치도록 충분해. 나는 벌을 좀 더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인생, 내 가정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 믿고 기도하고 있어. 나를 깨우쳐줘서 정말 고맙다, 내 친구 **야."



그렇게 보내놓고는 눈물이 터졌다. 한 번 눈물이 터지니 걷잡을 수 없었다. 내 인생은 통째로 어리석었다는 회한에. 물론 우리 집도 가난했지만 무사히 학교를 다닐 수는 있었다. 어린 나이의 내 친구가 겪었을 쓰라림을 나는 겪지 않았음에도 감사할 줄 몰랐다. 회개의 눈물이었다.



45년 전 겨우 한 바가지 퍼준 물로 지금 나는 양동이 물, 아니 저수지처럼 근원이 마르지 않는 물을 공급받고 있다. 혼자된 이후 지난 10년 간, 나는 릴레이 도움을 받는 기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마치 하나님이 "이번엔 네가 신아연을 도와라."라며 지속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명령하시는 듯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세상에서 나를 고마워하는 사람이 단 한 명 있다는 사실이 천국의 구원처럼 다가왔다. 받은 것에 감사할 줄도, 가족의 영혼을 돌볼 줄도 모른 채 엉망으로 살았지만 나의 그 단 하나의 선행을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도 있다는 소망의 눈물이었다.



평생 착한 일을 한 것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어서 지옥에 가게 된 어느 노파가, 어느 날 누군가에게 '양파 한 뿌리를 준 적이 있다'는 것에 구원의 희망을 품게 된다는 도스토옙스키의 글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그 노파가 바로 나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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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ges, 출처 Unsplash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76] 예수동행일기(4) 양파 한 뿌리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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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생한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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