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장자(15)
치언에 대한 글에 여러 의견들을 주셨습니다. 장자 시대나 우리 시대나 소통 부재로 시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왜냐하면 언어는 실재를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감정에 대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란 말을 하듯이요.
언어의 한계를 알면서도 언어로 의사를 전달할 수밖에 없는 인간, 그래서 '장자의 3언'이라 불리는 우언, 중언, 치언이 중요한 겁니다. 장자는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 수 있을까를 골똘히, 치열히 고민했던 거지요.
그럼에도 소통이 잘 안 돼서 시비가 붙었다고 칩시다. '치는 게'아니라 노상 있는 일이지요. 피튀기는 언쟁, 논쟁이 시작되는 거지요.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며 싸움을 합니다. 이때 장자가 말합니다.
"당신이 이기고 내가 졌다고 해서 당신이 옳고 내가 틀린 것일까? 내가 이기고 당신이 졌다고 해서 내가 옳고 당신이 틀린 것일까? 한쪽은 옳고 다른 쪽은 틀린 것일까? 아니면 양쪽 모두 옳거나 모두 틀린 것일까?"
애초 나와 상대의 기준과 잣대가 다르기 때문에 밤새 논쟁해 봤자 결론이 안 나는 거지요. 답답해 죽을 지경에서 뭐라고 하지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자, 누가 옳다고 하나." 이러지요. 이때 지나가는 사람은 뭐라 할지 장자가 대신 말해 줍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와 같은 의견이라면 내가 옳다고 할 것이며, 당신과 의견이 같다면 당신이 옳다고 할 테지. 그 사람이 당신이나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우리 둘다 틀렸다고 할 것이고, 당신이나 나의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둘다 옳다고 할 것이다."
나든, 너든, 제 3자든 결국 자기 잣대, 자기 기준, 자기 관점을 들이댈 뿐, 객관적으로 시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지요. 장자는 말합니다. 그러니 논쟁하지 말라고.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쓸데 없는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라면서.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어느 쪽이든 결론이 나게 되는데요, 그 기준은 뭘까요? '목소리 큰 사람'이지요. 가진 자,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요. 힘으로 누르는 거지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으로.
그렇다면 참된 지혜, 진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요? 아니, 있습니다. 장자는 논쟁을 그친 자리, 말을 폐한 자리에서 비로소 찾아진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도 말합니다.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으면 온전해 질 수 있다고. 말은 허망한 것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삶의 수레바퀴를 몽땅 불사르는 것이라며.
다음주에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83] 왕따 장자(15) 논쟁에서 이기는 사람|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