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장자(23)
제가 지난 달부터 <THE PR TIMES 더 피알 타임즈>라는 전문 월간지에 글을 한 편씩 싣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1인 가구와 개'에 대해 썼습니다. 장자는 본성과 자연스러움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백조는 날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은 칠을 하지 않아도 검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해도 늘여주면 괴로워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해도 잘라주면 고통이 된다.
제가 일전에 길을 가다가 사람보다 더 많이 옷을 껴 입은 개를 봤어요. 등에 가방까지 메고 네 발에는 신이 신겨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어기적거리는 거예요. 주인은 그 꼴이 귀엽다며 깔깔대고요. 저도 모르게 주인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발 좀 그만 괴롭히라고.
개 주인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소리를 지른 건 내가 잘못했는데, 이게 개한테 할 짓이냐고, 우리 이러지 말자고 제가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개를 키우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제발 좀 본성대로 키우시길요.
오늘은 아래 제 글로 대신합니다. 저도 혼자 살지만 사람이 혼자 사는 것도 본래 모습에는 어긋납니다. 그러기에 점점 더 본성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거겠지요.
[THE PR TIMES 신아연의 뷰스]
1인 가구 시대의 ‘개엄마’
“결혼 안 한 여자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얼마 전 지인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정답은 개란다. 지위를 높여 고상하게 말하자면 반려견.
일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한 여성이 생각났다. 커리어를 쌓고 자리를 잡은 후 문득 뒤돌아보니 어느새 40 목전에 동그마니 남겨져 있더라고. 결국 결혼을 포기하고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1인 가구 대열에 동참했단다.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이 30%를 훌쩍 넘었다. 1인 가구 700만 시대다. 가파르고 폭발적인 증가세다.
중년 이후 배우자와 이혼이나 사별 후 자녀들마저 따로 떨어져 지내는 중장노년층의 부득이한 1인 가구는 논외로 하자. 아예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 사는 젊은 사람들의 자발적, 선택적 1인 가구가 우울하고 걱정스럽다.
결혼이야말로 개인의 선택이라는 데야 할 말 없다. 결혼을 안 하니 신생아 울음소리가 뚝 끊겨 인구 절벽이 코앞이라고 한숨 쉬어 봤자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결혼도 안 하는 판에 출산을 바란다는 건 언감생심이니.
그런데 결혼에 혼수품 장만하듯 비혼 필수품으로 개가 딸려 온다는 게 의아하다. 솔직히 의아할 것도 없지만. 외롭다는 반증이니까.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혼자/ 사랑을 잊지 못해 애타는 마음/ 대답 없는 메아리 허공에 지네~~”
옛 유행가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노래 제목처럼 ‘사랑의 종말’ 시대다.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 즉 사랑하지 않고 혼자만 잘 살면, 아니 개하고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혼자 살면 편하다. 거추장스럽고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다. 더러는 재밌다. 돈이 넉넉하다면. 하지만 행복하진 않다.
혼자 사는 데 행복하다는 사람은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 행복할 수 없다. 나아가 ‘찐행복’은 책임과 헌신 있는 사랑에서 온다. 이건 관계적 본능이다.
그래서 대신 개를 키우는 것 아닌가. 개에게 헌신하며 행복을 느껴보려고.
그런데 이게 갈수록 수상쩍다. 잘 먹이는 것까진 뭐라 않겠다. 하지만 개 옷값에 수십만 원을 쓴다는 건 많이 이상한 것 아닌가. 언제 개가 옷 입혀 달랬나. 단언컨대 그건 학대다. 순전히 나 좋자고 하는 짓이니까. 사랑한다면 옷을 벗겨라.
개도 ‘개엄마’도 애처롭고 난감하다. 반려견을 넘어 이제는 개를 자식으로 여기는 데까지 갔다. 누군가엔가 헌신적 사랑을 하고 싶어서. 그건 본능이기에.
그런데 그 사랑이 깊어질수록 학대가 되고 마니 얼마나 서글프고 빗나간 일인가. 1인 가구 시대, 덩달아 개가 수난이다.
출처 : The PR Times 더피알타임스(https://www.the-pr.co.kr)
[출처] [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794] 왕따 장자(23) 혼자 사는 여자들이 있어야 할 것?|작성자 자생한방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