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동행일기(9)
"너는 누구이기에 남을 판단하느냐!"
지난 주 묵상한 야고보서 4장 12절 말씀이 가슴에 화인이 된다.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준엄한 음성이 되어 귓전을 울린다. 영혼을 각성시킨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판단하지 않는데 너는 어째서 그렇게 자식, 전남편, 언니들, 조카들, 친구, 지인, 교인 등등 만나는 사람마다 판단하고 나아가 정죄까지 하느냐."고. "어떻게 그렇게 서슴이 없냐."고.
유행가 가사 한 소절이 머리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계속 웅얼거리게 되는 것처럼, 성경을 읽다보면 어떤 말씀에 꽂힐 때가 있다. 가슴을 후벼파고 마음에 똬리를 틀면서 급기야 영혼 깊숙이 들어 앉는 것이다. 내게는 이 말씀이 그랬다.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성마르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일까. 그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을 샅샅이 살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모를 보지 못하고 단면만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다. 판단은 원래 잘 알 때 하는 거 아닌가? "내가 걔를 잘 아는데 걔는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말이다.
한 술 더 떠서 인상은 과학이라는 둥, 첫인상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둥 이런 말은 백정이 휘두르는 칼이다. '단칼에 판단'인 것이다. 내 경험상 첫인상이 곧 그 사람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은 두고두고 알아가는 것이지 마구마구 판단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럼 누구를 만나든 아무 판단도 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 정답은 "YES"다. 판단은 하나님이 하실 테니까.
판단이란 의지작용이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그쪽으로 힘을 가하고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판단할 의지로 사랑을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의지적 판단'을 '의지적 사랑'으로 전환하라신다.
마음에 우러나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연애할 때 잠깐 빼고는. 자식의 경우도 집착이지 사랑은 드문 것 같고.
결국 사랑은 결단이며 의지인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딱 찍으며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고 결단을 내ㅣ리신 것처럼. '솔까말' 나한테 무슨 사랑받을 구석이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하고 싶을 때마다 사랑하겠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판단은 예수에게, 사랑은 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