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동행일기(10)
유럽에 살던 어떤 한국 남자가 포르노물을 볼 때마다 가족 중 누가 아프더라는 말을 했다. 이전 유럽에는 극장 중에 야동 상영관이 있었는데 퇴근길이나 시간이 날 때 별생각 없이 들어가 보곤 했단다. 숨어서 몰래 보는 것과 달리 공개된 영화관이기에 별다른 죄의식이 없었다고.
그런데 야동을 보고 집에 들어간 날은 아내가 아프거나 아이가 병이 나거나 하더란다. 아침에는 아무 탈이 없었는데 말이다. 물론 처음에야 연관지어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몇 차례 겪고 나니 심상치 않게 여겨지더란다. 그래서 남자는 실험을 해보기로 하고 몇 차례 더 야동을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가족들이 아픈 걸 보고는 야동 보기를 그만뒀다고 한다.
이 남자는 크리스천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야동 보는 자신을 따끔히 벌주신 것으로 믿게 되었다고.
유튜브에서 어느 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야동을 보는 건 아니고, 내 경우는 사람을 만나고 오면 여지없이 편두통이 찾아든다. ‘야동 남자’처럼 매번 같은 일을 겪는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 하나 싶은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고?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관계의 단절을 원하신단 말인가? 사랑의 하나님 아니셨나? 아무리 질투하는 분이라 해도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며 질투하셨지, 당신이 만든 사람조차 질투하셨나? 그 정도로 나를, 나만 사랑하시나?’ 하고 따지는 마음이 올라왔으나...
편두통으로 오신 하나님, 이제는 제가 말귀를 알아듣습니다. 그러니까 인본주의, 특히 인문학에 경도된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지 말라는 말씀인 거지요?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골수 인문주의자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얼마 전까지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책하고는 담쌓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치열한 생각도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감각 쾌락적으로 사는 사람들과는 만날 일이 없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니.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가장 골치 아프신 거다. 나를 구원하는 데도 60년이 걸린 것처럼. 이성과 논리로 파악될 수 없다는 이유로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인정한다 해도 인문적 틀로 재단하여 본질을 호도하는.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을 전하도록 내게 사명을 주셨는데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되레 신났다고 함께 놀고 들어왔으니 “너 나를 이렇게 실망 시킬래?” 하시며 편두통으로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결혼해서 남편이 있는 여자가 옛날 애인을 만나고 다니는 격이다.
정말 그렇다. 나와는 배경이 다른 아직 낯선 남편인 예수보다 같은 물에서 놀았던 과거의 남자들이 체질적으로 익숙하다. 만났다 하면 신나게 ‘이빨을 까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영성 집안으로 시집온 새색시가 지적 세계의 옛 애인들과 놀아나는 한, 편두통을 면할 길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