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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출옥을 앞두고

[신아연의 영혼의 귀로1]

by 신아연

이 순간까지도 망설였습니다. 원래대로 <장자> 진도를 나갈 것인가, 아니면 나 개인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두고. 그러다 내 마음이 가는대로 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신아연의 영혼의 귀로'라고 제목을 달고 앞으로 약 2주간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원래도 거의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나? 그런데 무슨 멍석을 새삼 새로 깔려고 하지?" 하실테지요. 맞습니다. 제 글은 결국 제 이야기였지요. 노자를 통해서든, 장자를 펼쳐서든, 공자든, 맹자든, 성경이든 죄 거울로 삼아 제 자신을 비춰보곤 하죠.



그런데 제가 다음달 3일에 호주를 가게 되니 문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해서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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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작가의 '심상'





한국에 돌아온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제가 사상범 무기수의 딸이다 보니 곧잘 감옥 용어를 비유적으로 쓰곤 하는데, 저의 10년도 이제 '출옥'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기징역을 사시다 88 올림픽 때 특별 가석방되어 20년 20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된 제 선친에 비하면 절반 밖에 되지 않는 감옥생활이었지만.



"그럼 한국이 감옥이었단 말인가? 10년 만에 석방이든 가석방이든 되어 호주로 돌아간단 뜻인가? 누가 자기를 가뒀다고. 감옥을 자기 발로 찾아드는 사람도 있다더냐? 듣는 한국 사람 기분 무척 나쁘네." 하실 것 같네요. 송구합니다.



그럼에도 제 한국 생활을 감옥 비유에 드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제 아버지가 감옥에 계실 때처럼.



아버지의 감옥생활에는 세 가지가 각별하셨을 거예요. 첫째는 지독하게 외로웠다는 것,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을 포함하여. 둘째는 의식주 걱정이 없었다는 것, 당신 힘으로 살거나, 여느 40대 가장과 달리 가족들을 벌어먹이지도 않고. 세째는 동료 수인들을 챙기고 도와주셨다는 것, 때로는 당신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리하여 교도관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으셨다는 것.



제 감옥생활에도 이 세 가지가 겹칩니다. 부전여전이라고 할까요. 외로움이야 이젠 숫제 체질이 되어 버렸고, 의식주 해결이야 지금 제 모습이 바로 증거지요. 심청이 젖동냥 주듯 주변에서 얼마나 알뜰히 살뜰히 챙겨주셨는지 몰라요.



그저께는 특별히 살펴주신 분을 만나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 감옥 용어로 하자면 저의 징역살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영치금'을 넣어주신 분이죠.



세번 째에 관해서, 제 선친은 동료 수인들에게 당신의 영치금을 나눠 주시다 독방감금을 당하곤 했답니다. 영치금은 고사하고 수감 내내 면회도 한 번 못해보는 한방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가졌다는 죄목이 더해졌던 것이죠.



저 또한 영치금을 나눠쓰셨던 아버지처럼 제 마음을 나눕니다. "사회에서 무시당하며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나를 이렇게 존중해 준 사람은 작가님이 처음이다." "나와 끝까지 대화해 줘서 고맙다. 이제 절망에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제 감옥 생활에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고, 여섯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해 무려 20년 20일 동안 지속된 '편지 고문'의 기억 밖에는 없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아버지께 편지를 쓰는 일이 실로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사람은 태어나면 편지를 쓰는 것으로 인생을 시작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하기 싫은 일도 무조건 하는 습관이 제게 밴 것도 아버지께 쓰던 편지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실로 그런 습관이 있습니다. 거의 자학에 가까운. 싫을수록 해야 한다는 것이 편지쓰기로 체질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일 계속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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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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