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영혼의 귀로 5]
지난 월요일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호주 가기 전까지 다음 달 원고를 미리 당겨서 써두려는 것인데, 느닷없는 청탁 원고까지 끼어들었습니다. 중앙일보에서 저의 스위스 조력사 체험을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원고 마감 다음날 같은 주제로 강연이 있어 이래저래 다시 한번 스위스 동행기를 풀어내게 되었습니다.
스위스 조력사 이야기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할 수 있을만큼 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갑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조력사를 동영상과 책으로 접했다 해도 직접 보고 온 사람을 따라올 순 없을테니까요.
직접 보고온 사람, 그것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낸 사람은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저뿐이겠지요. 워낙 독특한 체험이라 9월까지 강연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방송 출연이든, 원고 청탁이든, 강연이든 스위스 체험이 소환될 때마다 저는 고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제 마음은 그분이 조력사를 했다는 것에만 고정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고인의 조력사에만 관심이 있지만, 저는 그분이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온 것은 모을 것을 모으고 알 것을 알아서 이웃에 주고 가려고 나왔다. 돈이 있는 사람은 모은 돈을 주고,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주고 그래서 줄 것을 다 주면 끝을 꽉 맺는다. 죽음이란 줄 것을 다 주고 꼭 마감을 하고 끝내는 것이다. 줄 것을 다 주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죽음이다. "- 다석 류영모
제가 요즘 다석 류영모 선생의 사상을 공부하고 있는데, 어제는 죽음에 관한 다석의 생각을 들었습니다. 다석에 대해서는 독자이신 양승국 변호사님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https://blog.naver.com/yangaram1/222623490962
다석의 죽음 생각에 비춘다면 스위스에서 조력사로 생을 마감한 고인 또한 줄 것을 다 주고 세상을 떠나셨다는 점에서 완결된 삶을 사셨습니다.
저와의 대화에서 늘 '이웃사랑'이 화두였으니까요. 친절하고 따스한 말로, 남들이 꺼리는 일일수록 본인이 선뜻 나서서 하는 행동으로, 크고 작은 선물을 비롯한 물질과 돈 나눔의 선행으로 그렇게 다 주고 떠나셨지요. 그 부분에 관한 한 미진함이 없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조력자살이었다 해도 본인이 죽는 날을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과 마지막 몇 달을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행운이었습니다. 죽음이 막연하지 않을수록 남아 있는 삶도 그만큼 명료해 지는 법이니까요. 다석의 가르침대로, 조력사 고인의 실천대로 저도 줄 것을 다 주고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부쩍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면 전반 인생에서 받지 못했던 것까지 후반 인생에 쏟아부어지는 느낌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흘려보낼 수 있겠지요.
어제도 지인으로부터 세심하고 다사로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를 향한 지인들의 사랑 릴레이가 날마다 펼쳐지고 있습니다. 뒤늦게 왜 제게 이런 과분한 사랑이 찾아올까요? 아마도 제가 죽기 전 세상에 주고 갈 것이 하나도 없을까봐 많이 가진 분들이 자기 것을 떼어 제게 나눠주시는 거겠지요.
제가 '한국생활 10년 감옥'에서 출소한다는 것은 영성으로 날아오른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사랑으로 날개를 달겠다는 의미입니다. 비단 10년뿐이겠습니까.
60평생을 감옥살이한 인생이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하지 못한 세월이었습니다. 초반 20년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아니었다 쳐도, 나머지 40년은 내 잘못으로 '개고생의 광야'를 헤맸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제 하나님을 만나 고생이 축복이었다는 고백이 목련꽃 벙글 듯 터집니다.
제 인생만 놓고 본다면 이제 가나안이 눈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다석 식으로 말한다면 줄 것을 다 주고 위로 올라갈 자세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의 광야생활은 끝나 가지만, 그러나 그 전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억눌린 영으로 신음하는 전남편과 두 아들을 구해내야 합니다. 제 가정에 저는 '여자 모세'인 거지요.
하재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