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동행일기(12)
이 글은 5월 11일에 쓴 글입니다.
호주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지난 주에 모처럼 글을 썼는데, 많은 분들이 많이 반가워 하셔서 톡을 주고받느라 온 종일, 며칠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또 글을 씁니다. 여러분들께서 저를 아껴주시는 것처럼 저도 여러분들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제 각각 혼자인 것 같아도 서로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저도 하나님 알기 전에는 혼자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서 나온 사람들이니까요.
그 진리를 깨달은 후 저는 누구를 만나든 "저 사람도 나처럼 하나님이 만든 사람이야. 작동을 하든 않든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어. 마치 겨울의 에어컨디셔너처럼 지금은 그저 몸체로만 있지만 여름이 되면, 때가 되면 스위치가 'ON' 되면서 상쾌한 바람을 쏟아낼 수 있단 말이지. 저 사람 안의 성령(하나님의 영)의 바람도 어느 날 문득 그렇게 작동할 거야." 이런 마음이 듭니다.
그러면 말 한 마디라도 함부로 못하게 되지요. 그 사람의 마음과 기분, 생각을 살피게 되지요. 하물며 막말하고, 욕하고, 소리지르고, 때리고, 멱살쥐고, 그러다 죽이기까지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결국 내가 나한테 그렇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하나님' 안 지가, 우리 모두는 '하나의 님'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지가 얼마 되지 않다보니 옛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하나님 모를 때처럼 굴 때 (소위 말하는 '욱'하는 것 / 저는 그러지는 않습니다만, 여하튼)가 여전히 많습니다만, 그럴 때는 상대에게 바로 진심으로 사과하고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는 수 없잖아요. 습관이란 게 있으니 변하고 성장해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거니까요.
지난 주 글 이후 "그래, 전 남편은 만났냐? 화해가 될 조짐이 보이냐?"고 몇 분이 물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옛사람적으로 말하면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적으로, 새사람적으로 말하면 이미 화해가 이뤄졌습니다. '믿음대로' 이뤄지는 거니까요.
떡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더니, 전 남편은 화해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는데 저는 보금자리부터 꾸미는 형국입니다.
아직도 미련이 있냐고, 스토커도 아니고 싫다는 데 왜 자꾸 추근대냐고, 지금이라도 딴 남자 만나면 안 되겠냐고, 심지어 저더러 성적 굶주림 때문이냐고 묻는 분도 있습니다만, 전부 다 아닙니다.
원래 하나였기 때문에 그 하나됨을 회복하려는 것뿐입니다. 상처주고 상처받았던 것을 치료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왜 그냥 뒀냐고 물으실 건가요?
전에는 치료자를 못 만나서 그랬지요. 자생한방병원의 '척추 명의(名醫)'처럼 '관계의 명의'를 못 만났기 때문에 포기해야 되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이제는 '치료자 하나님'을 만났잖아요.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고칠 수 있는 의사가 있다는 데도 "나 이대로 죽을래." 할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치인 줄 알았던, 그래서 '관계암'으로 사망선고를 받았던 저희 부부를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다잖아요. 이제 저는 집도의, 하나님을 믿고 우선 저 혼자라도 수술대에 오르겠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43;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