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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이 밥 먹여 주었듯이

예수동행일기(14)

by 신아연

이 글은 5월 19일에 썼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말은 좀...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독자 입장에서 작가를 볼 때 어떤 선입견을 갖지 않을까 해서요...”



13회 예수동행일기에 이런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호주에서 우연히 제 ‘혼밥’을 맛보신 분이라 밥이 거칠어 잘 넘어가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첫술이라 그러실 테지만 계속 드신다면 익숙해지실 거예요.^^ 제 글과 제 영혼의 민낯에.



아마도 이분은 작가에 대해 어떤 상(相)을 짓고 계신 듯 합니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 이럴 것이다' 란. 그야말로 선입견을.



“먹고 살기 위해 쓰는 글처럼 절실한 글이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상 노가다지요.”



이렇게 답을 드렸지만 수긍하지 않으시고 저를 딱하게 여기시네요. ^^



실상 저는 ‘작가’라는 그 거대한 이름에 걸맞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처럼 글 나부랑이나 쓰는 사람이 무슨 작가인가요?



제 아침 글 받으시는 분 중에 대하소설 <객주>를 쓰신 김주영 작가님이 계십니다. 김 작가님이 저한테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네.ㅎㅎ”라며 농담 짙은 격려를 해 주시지만, 그분 수준이 되어야 ‘작가’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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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스토옙스키도 돈 때문에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가 쓴 원고지마다 옆퉁이, 귀퉁이에 숫자가 기입 되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몇 장 썼으니 얼마를 벌었다.”라며 원고료를 계산한 흔적이었다네요. 글을 써서 도박빚을 갚아야 했으니 그 절실함이 오죽했겠습니까.



저도 그럽니다. 청탁이나 기고 제안을 받으면 원고료는 얼마냐고 먼저 묻습니다. 어지간히 다급하고 헌신적인 곳 아니고는 돈 안 주는 곳에 왜 글을 씁니까(저한테 공짜 글 써달라는 곳은 없지만). 책정된 고료보다 더 줄 때는 있어도. 그런 때는 언제냐고요? 자기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제가 훨씬 멋진 글을 썼을 때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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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함’에 대해 말하려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절실한 몸부림으로 지난 10년을 끊임없이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에 심신이 지치다 못해, 때로는 진이 다 빠지고 혈이 졸아드는 것 같아 먹고 살려다 되레 죽을 수도 있겠다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한 달 원고료로 연명을 했지만 결과는 책으로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전부 합쳐서 11권의 책을 냈으니까요. 책이 뭐 대단하냐고 하시면 할 말 없지만 먹고 똥 된 것보단 낫지요.^^



저의 그 절실함이 이제는 신앙으로 옮겨갔습니다. 육을 먹이려고 10년을 한결같이 애를 썼듯이, 이제는 영을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습니다. 살아내야 한다는 생존의 절박함이 돈을 벌게 했듯이, 영적 생명과 가족 구원, 가정 회복의 절실함이 기도하게 합니다.



지난 10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동력이 되어 과분하게도 ‘작가’로 불리게 됐듯이, 이제 새로운 10년, 아니 죽을 때까지 영적 성장의 절실함이 동력이 되어 어떤 이름을 갖게 될지 가슴 벅차게 기대되는 아침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기도하고 구하면, 그대로 되는 섭리를 믿으며!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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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Manly beach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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