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5)
이 글은 6월 9일에 쓴 글입니다.
육체의 고통에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고, 정신의 고통에도 버텨낼 수 있는 극점이 있습니다. 육체 고통은 논외로 하고, 정신이 끝없는 고통의 쳇바퀴를 돌 때 그것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이 정신에는 없습니다. 내 힘으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만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그 마음 먹기가 저절로 되질 않는단 말이죠. 내 마음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없잖아요. 마인드 컨트롤, 마음수련, 명상, 내면 성찰 따위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건 일시적 진통제요 청량음료에 불과합니다. 근본치료가 아닙니다.
'생각'이 사탄입니다. 어둡고 절망적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으니 말이죠. 이쯤되면 생각도 내 것이 아니지요. 그만하고 싶은데 자꾸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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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죽을 것 같은 생각'과 실제 죽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이미 나를 초죽음이 되게 합니다. 5월 12일 밤, 비극적 생각이 극한으로 저를 몰아갔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절망의 질주로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음에 이르는 병'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상태를 성경 말씀이 잘 표현하고 있지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로마서 8장6절
육신의 비극적 생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영의 생각'뿐입니다. 영의 생각을 붙잡기만 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평안과 함께 생명의 길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돌아서기만 하면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까만색과 흰색의 대비처럼 이제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릴 수 있는데 말이죠.
문제는 영의 생각은 내 안에서 만들어낼 수 없다는 거지요. 아까 말했지요? 마인드 컨트롤, 마음수련, 명상, 내면 성찰, 자기 돌아보기로 되는 게 아닙니다.
생존에 꼭 필요한 필수 영양 성분이지만 우리 몸에서 직접 만들어낼 수 없어서 반드시 바깥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것이 있듯이, 영이 꼭 그렇습니다.
퇴화된 꼬리뼈의 기능처럼 우리에겐 '영 자리'만 있을 뿐 한 번도 작동된 적이 없어요. 생명과 평안이 흐르는 영의 전원을 플러그에 꽂아본 적이 평생 한 번도 없다는 겁니다.
'영혼의 맛집'에서 제가 하려는 것이 바로 우리 안에 영이 흘러들게 하는 법, 평안과 생명의 영을 장착시키는 방법입니다. 다음 주에는 그 방법을 집중 연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