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17)
이 글은 6월 28일에 쓴 글입니다.
어제도 수해 복구 현장을 지나갔습니다. 1년 전 폭우의 현장은 여전히 심난했습니다. 풀어헤쳐 놓으니 더 그랬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만나기 전까지는 지난날의 과오를 복구하려는 제 심적, 영적 현장도 참혹하고 황폐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암담했습니다.
제게 지난날의 과오는 제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다는 것과, 그 결과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남편을 만났다는 것과, 또 그 결과 두 아들을 '영적고아'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둘 다 15세에 집을 나갔으니 실제로도 고아처럼 살았습니다. 뭘 먹고, 뭘 입고, 어디서 잠을 잤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런 아이들이 망가지거나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제 몫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 부모로서 누릴 자격이 없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 아이들과 저를 불쌍히 여겨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에 관한 한 남편과 둘이 상처를 주었으니 복구도 함께하자고 이번에 호주를 가서 설득하고 간청하려고 했던 건데 결국은 코빼기도 못 보고 돌아왔습니다.
가정 회복과 가족관계 복구를 위해서는 내 자신이 먼저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데 남편은 그 용기를 끝내 내지 못했습니다. 기왕 망친 인생, 그냥 이렇게 살다 죽겠다는 식이었습니다. 솔직히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애써 축소하려고 했습니다. 본인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거지요. 아프긴 아프지만 별 병 아니라며 스스로를 속이는 거지요.
병원을 가야 할 환자가, 그것도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환자가 치료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니...
반면 저는 호주에서 '완치' 판정을 받고 이제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에 관한 과오는 복구된 것이지요. 저는 '새사람'이 되어 진정으로 제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외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제 자신과의 관계를 온유와 긍휼로 맺는 법을 압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호주에서 치료를 마친 후 발걸음도 가벼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이제는 두 아들의 영적 상태를 세심히 살핍니다. 전 남편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복구시키시기 전에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 전에는.
너희는 찾을 만한 때에 여호와를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여호와를 불러라. 여호와께로 돌아오너라. 그러면 여호와께서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그러면 여호와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다.
이사야 55장 6, 7절
하재열 작가의 '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