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18)
이 글은 6월 29일에 쓴 글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거의 혼자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감옥가고, 엄마는 돈 벌러 가고, 언니, 오빠들은 학교 가고. 막내인 저는 집에서 기르는 똥개 한 마리와 늘 지냈습니다. <플랜더스의 개> 같은 처지였지요.
제 인생의 그 똥개들은 어려서부터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저를 위해 엄마가 일부러 키우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돌리틀 선생처럼 개와 대화할 줄 압니다. 개를 좋아하다 못해 동일시가 일어나며 개의 마음을 읽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개와 잘 지내는 것이 천성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길을 가면 모르는 개들이 저를 따라오는 이유입니다. 호주에서도 길 잃은 개들이 따라오곤 했지요.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나중에 학교 가서 도서관이란 곳을 접하면서부터였고, 너무 가난해서 집에는 동화책 한 권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지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하재열 작가의 '심상'
돌이켜 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저는 '생각의 질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의 대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병들었다."고 할까요.
집에 책이 있어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생각, 옆에 보호자가 있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생각, 주변의 따듯한 관심으로 나의 미래를 꿈꾸는 생각이라면야 할수록 좋겠지만, 그 모든 밝은 세상을 등지고 어둠의 진공에 갇힌 채 혼자 골똘히 생각에 생각으로 빠져들어가는, 그리하여 날마다 어둑하고 눅진한 생각의 우물바닥에 기진한 채 가라앉아 있는 가여운 어린 아이가 저였습니다.
그 방치된 무력한 아이가 꿈도 희망도 없이 성장하여 몸만 어른일 뿐, 자신조차 지키지 못해 가정 폭력이란 올무에 걸리게 되고, 그리고는 그 쓴뿌리를 자식들에까지 물려주고 마는.
제 자신을 복구하는 수술이란, 생각의 질병을 도려내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이란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초에 생각이 들어왔고, 그 생각을 품었으며, 그 생각을 키워가며 그 생각이 그대로 나인 줄 속고 살았던 60평생을 복구하는 대수술! 그 악성 종양 자리를 예수의 영으로 채우는 복원 수술!
하재열 작가의 '심상'
독자들 중에도 과거의 저처럼 유독 생각 많은 분들이 계실 거예요. 하지만 인간의 생각이란 결국 어두운 쪽으로 빠지고 맙니다.
후회, 불안, 염려, 걱정, 절망, 시기, 질투, 비교, 욕심, 경쟁, 죄책감, 수치심, 외로움, 우울감, 공허함, 두려움, 막막함, 어리석음, 억울함, 노여움 등등 생각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제가 왜 장담할 수 있는가 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부정적 생각들은 바로 인간의 죄성에서 기인합니다. 죄의 증거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기독교는 맨날 죄타령이냐고 하실 분, 당신이 후회, 불안, 염려, 걱정, 절망, 시기, 질투, 비교, 욕심, 경쟁, 죄책감, 수치심, 외로움, 우울감, 공허함, 두려움, 막막함, 어리석음, 억울함, 노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죄인이 아닙니다. 타락 전의 아담, 이브입니다.
그러면 또 이러실 테죠. 그게 왜 죄냐고. 인간이란, 인간의 실존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아니요, 원래 그런 것 아닙니다. 우리가 속고 살았던 거더라고요.
철부지를 제외하고, 백일몽도 아니고, 제 정신인 상태에서 생각이 오직 희망적으로 펼쳐진다면 당신은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의 생각을 내 생각처럼 하는 사람이니까요.
저 예미녀는 생각의 암을 절제한 후 그 자리를 기도로 채웁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할 조짐이 약간만 보여도, 마치 암이 재발할새라, 그 생각을 바로 기도로 돌립니다. 다른 말로 인간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바꿉니다. 그러면 이내 평안과 기쁨이 들어찹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장 6절
이제 어떻게 하면 내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지가 궁금하실 텐데요, 예미녀 맛집, 메인 메뉴 출시가 코앞에 닥쳤네요.^^ 제가 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