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19)
이 글은 6월 30일에 썼습니다.
벌써 6월 마지막 날이네요. 호주에서 돌아온 지 꼭 한 달이 지났습니다. 지난 한 달간 시루 속 콩나물처럼, 나무의 가지처럼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지냈습니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시루 밑으로 다 빠져 나가는 데도 콩나물은 자라죠. 콩나물은 시루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삽니다. 콩나물 한 가닥이 어떤 연유로 시루를 뛰쳐나가는 순간 곧 말라서 죽겠지요.
나뭇가지가 살 길은 나무 몸통에 붙어있는 거지요. 어떻게든 붙어있기만 하면 삽니다. 어떤 연유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을 다하겠지요.
콩나물처럼, 나뭇가지처럼 예수님 안에 산다는 것은 실상 참 쉬운 일이죠. 그냥 그 자리에, 원래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되니까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장 5절
하재열 작가의 '심상'
어제 글에 한 독자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하기에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죠.
독자 ;
인간이 모두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군요. 아담의 후예라서 그렇다는 말씀인데 아담의 죄는 그렇다치고 그 후예까지 왜 죄인인가요?
나 ;
우리 속에서 아담의 죄성이 그대로 보이니까요. 가령 곱슬머리 부모에게서 곱슬머리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요. 그 죄성이란 제가 글에 쓴 인간의 모든 부정적인 심리현상이 한 예가 될 수 있겠고요. 그런 심리현상은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렸으면 좋겠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되니까 나타나는 거고요. 일이 자기 뜻대로 되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는데 내가 그게 안 된다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면 그게 바로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해서인거죠.
죄란 화살이 과녁을 벗어난 상태라고 하지요. 그 과녁은 우주의 원리요, 세상의 섭리요, 피조물의 질서요, 만물의 기준이죠. 한 마디로, 대표적 언어로 '하나님'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이란 과녁'에 맞추어져야할 화살이 빗나가 버린 게 죄인 거지요. 화살을 엉뚱한 방향으로 날린 게 죄지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 버린 게 죄란 뜻입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타계 전에 24개의 신학적 질문을 했지요. 그 중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하려고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요?”가 있었습니다.
차동엽 신부가 이렇게 답했지요. “죄는 히브리어로 하타(hata),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입니다. ‘과녁을 빗나간 상태’란 뜻이지요. 과녁이 뭔가요? 기준입니다. 그러니 어떤 기준을 벗어난 상태가 죄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이란 과녁을 향해 백발백중 활을 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기준에 온전히 맞춰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담 이래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거고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준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로마서 3장 23절
그러니 이를 어찌할까요? 우리 모두 그냥 이렇게 살다 죽어야 할까요? 죄를 벗어날 무슨 묘책이 없을까요? 당근,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