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29)
어제 글에서 제 두 아들의 이름을 말씀드렸지요. 기도해 주시겠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 전남편의 이름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기도해 주십사고.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과 막연히 "신아연의 전남편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고..."하는 것은 일반명사와 고유명사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일반명사에서 고유명사가 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콕 집어' 아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장1절
하재열 작가의 '심상'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은 도떼기 시장에서도 우리를 한 순간에 찾아내신다는 뜻입니다. 그딴 건 하나님한테는 '껌'이죠. 그 정도는 우리도 하니까요. 똑 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 문으로 쏟아져 나와도 내 아이를 대번에 찾지 않습니까.
'부모 본능'이 그렇게 작동하는 거지요. 자나깨나, 24시간 자식을 마음에 품고 있으니 의식이 자동으로 자식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 연결 코드는 내가 죽어야 끝나죠. 아예 '내가 걔'니까요. 그래서 진원과 규원이 저한테는 생명 같은 존재입니다.
사진에 진원, 규원이 잘 생겼다고 하셔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릴 적 붕어빵 말이 생각납니다. 붕어빵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과 주변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규원아, 사람들이 너보고 잘 생겼대."
"그럼 남의 자식한테 못 생겼다고 하겠어? 엄마 같으면 그러겠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지. "
초등학교 2, 3학년 때,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애들 눈이니까요, 더구나 서양애들 눈이니까 제대로 못 본 게 맞겠지만. ^^).
"너네 엄마 예쁘다."
"우리 엄마는 인텔리전트한 분위기가 있는 거지 예쁜 얼굴이라고 할 순 없지."
붕어빵의 그런 냉철함으로 인해 예쁘다는 소리는 생전 들어보질 못했지만, 예의 그 객관적 판단으로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눈물나도록 감동적, 감격적 고마움을 느낍니다.
하재열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되, 공정하고 객관적이실 것 같지요?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편애의 끝판왕'이십니다. 저는 성경에서 아래 말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잘못 읽은 줄 알고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너희가 내게는 소중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목숨과 너희를 바꾸어
그들로 너희 대신 죽게 하겠다.
이사야 43장4절
세상에나! 육신의 부모도 이렇게 하진 못할 것 같은데 말이죠. 아니 이렇게 하면 안 되지요. 내 자식이 소중하다고 다른 집 아이를 희생시킨다는 건 비윤리 그 자체니까요.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짓인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겠다잖아요. 당신 자식들에게 파격적 편애를 베풀겠다시잖아요.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일반명사 따위는 안중에 없고 오직 당신의 자녀인 고유명사를 목숨 걸고 지키시겠다잖아요.
단, 조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