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살 청년을 생각하는 아침

예미녀의 맛깔난 예수(31)

by 신아연


주변의 28세 청년이 엊그제 자살을 했습니다. 도저히 길이 없어 보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던 것 같습니다. 입관과 발인을 보고 온 지인과 밤늦게까지 대화하며 내린 결론이, 그 청년이 신앙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란 거였지요.



제 두 아들도 별 일을 다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만, 신앙이 있다는 것이, 말 그대로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 절망과 좌절의 늪을 헤쳐나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 곁을 떠나지 않는 거지요.



부모는 있지도 않은 신앙을 저희들 스스로 먼저 접한 것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제가 지금처럼만 신앙이 있었다면, 애들 아버지가 지금 저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면 아이들 가슴에 몽고반점처럼 시퍼런 멍이 들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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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그 또래 청년들에게 부모가 무슨 힘이 됩니까.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 해서 죽으려는 자식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돈으로 순간의 위기를 무마시킨다고 해도 결국 정신의 문제요, 마음가짐의 문제니까요.



인생길을 주행할 때 매순간 어떤 길로 들어설지를 결정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도 마음이요, 그 길에서 되돌아 나오는 것도 마음에 달렸습니다. 가서는 안 될 길을 질주하는 것도 마음이요, 그래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생사갈림이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이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잠언 4장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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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에 영프로그램을 까는 법을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육프로그램과 혼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했지요. 육프로그램은 쓰임이 간단하지요. 본능 부분을 처리하니까요. 그리고 그 본능은 웬만하면, 웬만큼 사회화가 되면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물론 요즘은 사회가 사악하고 인간성이 흉포해져서 성범죄, 묻지마살인 등 육프로그램을 극단적 방식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정도로 절제가 안 되지는 않지요. 결국 육체의 과열된, 탈선적 욕망을 혼(정신)으로 제어하고 죽여야만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혼프로그램의 과열을 영프로그램으로 식히지 않으면,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돈, 명예, 권력, 가족, 건강, 장수 등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사람이 이상해지는 거지요. 이른바 우상숭배자이자 중독자가 되는 거지요. 파멸하게 되는 거지요.



하나님이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나는 질투하는 자'라는 인간적 용어까지 써가면서 그렇게 강조하시는 이유는 그런 것을 계속 좇다가는 결국 우리가 죽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죄라는 게 그 뜻입니다. 돈, 명예, 권력, 가족, 건강, 장수 등이 남을 위한 일인가요? 죄다 자기만, 내 가족만 좋게 하자는 거잖아요.



한평생 그러다 죽는 게 우리 아닌가요? 열심히 산다고 해봤자 결국 자기밖에는, 자기 이익 추구밖에 더 있나요?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행복, 행복'이란 것도 결국 그 소리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그 길이 당장 안 보이니까 자살하는 거고요.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성경은 '육신의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장 5,6절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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