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는 울보 웃보

예미녀의 맛깔난 예수(43)

by 신아연


우리도 분발하여 예미녀가 됩시다.


나는 왜 예미녀가 되지 않을까요?


신아연 씨는 어떻게 예미녀가 되었나요?



제가 '예미녀(예수에 미친 여자)'가 된 후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 가운데 "그 전엔 미녀였는데 이젠 예미녀가 되었군." 하는 지인 농담이 저를 빵 터지게 했습니다.ㅎㅎ 듣던 중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고요. ㅎㅎㅎ 이 나이에도 예쁘다는 말은 제일 듣기 좋습니다. ㅎㅎㅎㅎ



예미녀가 된 이후 저는 잘 웃고, 자주 웃고, 시원하게 웃는 일이 많습니다. 미친 여자니까요. 또한 잘 울고, 자주 울고, 깊게 우는 일이 잦습니다. 역시 미친 여자니까요. 머리에 꽃만 꽂으면 됩니다. 조울증 환자냐고요?



예미녀가 된 후 '울보, 웃보'가 된 이유는 영이 감동한 때문입니다. 본래의 나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나, 혼의 나, 거짓 자아, 에고, 페르소나의 나를 벗고 참나, 영의 나, 참 자아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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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만 공감할 말이지만 가슴을 옥죄던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고 민가슴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자유랄까요? 브래지어는 물론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 안정감이란 일이 내 뜻대로 되었을 때, 내 마음에 흡족할 때, 소위 말하는 행복하다고 느낄 때 잠시, 조건부로 주어지는 안정감이죠.



상황은 곧 다시 바뀌고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집니다. 방금 전의 행복감은 온데 간데 없고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두려워지고 걱정이 밀려듭니다. 밀물, 썰물이 교대하듯이 마음이 출렁입니다.



마음에 초점을 두는 한, 다른 말로 혼프로그램을 돌리는 한 혼작용의 굴레 아래 허덕이고, 그 부작용에 오염되는 것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것이 혼프로그램의 한계이자 본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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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ngyart, 출처 Unsplash





여러분, 마음이 내가 아니예요. 내 생각, 내 감정, 내 기분, 내 느낌이 내가 아니라고요. 어떤 때는 살만 하다가 이내 곧 죽을 것 같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뒤집어지는 생각, 좋았다 싫었다 팥죽 끓듯하는 감정,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 멋대로 오가는 느낌, 그것이 어떻게 항상적인 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미녀는 내 생각, 내 감정, 내 기분, 내 느낌이 어떠하든 간에 예수께 꼭 붙어있습니다. 그럴수록 더 붙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미녀인 거지요.



제게도 제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당연히 있습니다. 해결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제 책 제목처럼 '좋아지지도, 그렇다고 놓아지지도 않는' 일들이.



전남편의 영혼구원과 두 아들의 내면 상처 치유가 가장 갈급하고 당면한 일이지요. 독일에 살고 있는 아빠 없는 다섯 살 손자와 그 엄마도 저의 기도제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온전합니다. 제 영은 온전합니다. 제 영이 본래의 나, 진짜 나니까요.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주께 맡긴 후 제게는 부족함이 없고, 심지어 내 잔이 넘친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영프로그램을 돌려 살 때의 모습입니다. 이제 드디어 나왔네요. 영프로그램을 깔았을 때의 현상들이. 다음주에도 계속 쏟아집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evil)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table)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편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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