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44)
더위에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폭염이 예사롭지 않네요. 저는 지난 주 생업글 외에는 글을 쉬었습니다. 나름 휴가를 낸 거지요. 책 읽고, 옥수수 사먹고.^^ 왜 하필 이 두 가지를 언급하냐면 둘다 오랫 만에 한 일이라서요.
옥수수를 좋아하지만 왠지 돈 내고 사먹게 되지는 않고, 책은 10년 동안 읽었으니까 앞으로의 10년은 책 대신 삶에서 부딪혀 보려고 점차 책 읽는 시간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책이란 게 그렇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지요. 그러니 어느 선에서 그만 둬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중독에서 벗어나듯.
그래놓고는 또 책 낼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네요. 하지만 제 직업이니까요. 글 쓰는 사람은 끊임없이 글을 쓰고, 그 글을 책으로 묶는 게 직업에 충실한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죄를 짓는 측면이 있습니다. 책 한 권을 만들 때마다 나무 한 그루 씩이 베어져 나간다니까요. 저는 이미 열한 그루의 나무를 벤 '죄인'이고 계속해서 죄를 지을 예정입니다.
결국 욕심이고, 인정 욕구 충족이요, 허영심이며, 이기적인 태도이지요. 온라인에 발표하면 됐지 그걸 꼭 책으로 내야 하냐고 타박하실테지만, 여러분의 타박 이전에 저의 내면 구박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이 죄인, 책을 내되 부수는 최소로 하여 내겠습니다.
에미녀의 옛적 별명은 '천생글쟁이'였습니다. 멋있고 대단한 글을 쓰지 못하면서도 글벌레처럼, 누에고치처럼 평생 글을 지어내니 저의 정체성이 천생글쟁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에 얕잡는 마음으로 저 스스로 그렇게 불렀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제 자신도, 남들에게도 천생글쟁이라고 부르지 말라 합니다. 그렇게 불리울수록 제 글이 성장하지 못할 것 같아서. 무책임해질 것 같아서. 써도그만 안 써도 그만일 것 같아서.
그럼 뭐라고 불리우길 원하냐고요? 작가 소리 듣고 싶냐고요? 이미 듣고 있지요. 그러나 '작가'로 불릴 때마다 가슴에 쿵 소리가 나고,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부담스럽습니다. 하기야 요즘은 개나 소나 작가인 세상인지라.... 호칭 인플레도 유만부동이지...
그럼에도 저는 '천우'라는 제 별명을 좋아합니다. 천우는 또 무슨 뜻이냐고요? '천생글쟁이 우뚝 서라'는 뜻입니다. 10년 전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 막막하기 그지 없을 때, 살아갈 아무런 대책이 없을 때 저를 아끼시는 어떤 분이 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천우'는 그분과 저 사이에서만 부르는 이름이지요.
돌이켜 보면 저는 그 별명을 붙잡고 일어섰던 것 같습니다. 10년 후 지금 저는 정말로 '천우'가 되었으니까요. 그 흔한 문학상 하나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 내는 책마다 초판도 제대로 팔린 적이 없는 사람이 더위 먹었나? 무슨 헛소리를 하나 하실 테지만, 아니요, 저는 이미 천우가 되었습니다.
생활비가 빠듯해 대필이라도 해 보려고 개인적으로 부탁도 하고 전문으로 알선하는 곳의 운영자도 만났더랬지요.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처럼 피를 팔러 나섰던 건데요, 제 피를 팔아 제 피를 사는 웃픈 현실의 저. 그랬던 제가 먹고 살 걱정 하나 없는 천우가 되었다니까요.
베드로에게,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제게, 내가 너로 사람 구하는 글을 쓰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네가 먹고 사는 것은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하셨지요. 천생글쟁이, 이만하면 우뚝 섰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글 써서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명까지 부여받았으니.
하재열 작가의 '심상'
여러분, 믿음대로 됩니다. 믿음의 다른 말은 순종입니다. 저는 아래 마태복음 말씀을 믿고 순종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