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46)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믿고 있으니까요(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천국의 사냥꾼이란 표현처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추적하시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모두 당신의 사냥감이 되는 것이지요^^."
어제 글에 이런 댓글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는 패스워드'라고 해 놓고는 무책임한 말, 김새는 말을 한 것 같아 찜찜하던 차에.
믿음을 '어떻게' 가지냐고 묻는 것은 마치 공리(公理)를 증명하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공리란, 하나의 이론에서 증명 없이 옳은 것으로 인정하는 명제, 즉 조건 없이 전제된 명제이기에.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게 공리이듯이 믿음도 그와 같은 거지요. 증명할 길이 없어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한복음 3장 6절
제 버전으로 하자면 혼프로그램과 영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이란 뜻입니다. 프로그램이 다르니 다른 생성물을 내지요. 당연한 얘기지요.
은행 계좌를 새로 열면 비밀번호를 설정하지요. 그래야 그 계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이때 왜 비밀번호가 필요하냐고 따지는 사람 없지요. 그처럼 믿음은 '하늘 계좌'로 들어가는 패스워드입니다. 은행에서 비밀번호를 거저 내 주듯, 하늘 계좌의 비밀번호도 거저 주어집니다. 무엇으로? 은혜로!
비밀번호만 누르면 하늘 계좌는 곧장 열립니다. 믿음만 가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이란 선물이 주어지기 전, 저는 마음의 내시경을 받았다고 했지요. 대장 내시경 받듯이 마음을 비웠다고 했습니다. 무엇으로? 회개로.
회개가 뭐라고 했지요? '나 중심 과녁'에서 '하나님 중심 과녁'으로 돌아오는 것이라 했지요. 내 마음을 하나님 마음으로 돌리는 것, 회심하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살면서 이런 죄를 지었네, 저런 죄도 지었네, 어쩌네 하는 건 나중 얘기고, 우선 과녁이동을 하는 게 회개입니다. 회개가 우선입니다. 과녁 자체가 비뚫어졌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거니까요.
하나님 과녁 앞에 있다는 기독교인들도 죄만 잘 짓더라, 더 잘 짓더라 하실 분, 이 대목에서 꼭 나와 주셔야 장단이 맞지요.ㅎ
그건 나중에 다루기로 해요. 저는 여러분들이 무슨 말로 따지고 들지 다 알아요. 왜냐하면 제가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하나님께도 제가 필요합니다. 마치 중개업자처럼.
저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선에서 여러분들의 궁금증과 공격조차도 최대한 논리적으로 (공리만 빼놓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저한테 미친 예수쟁이라고 욕하고 싶으면 하세요. 저는 다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아니, 여러분보다 더 했으니까요.
저는 예수에 미쳤지만 논리적으로 미쳤어요. 저는 대학에서 철학을 배우고 지난 10년 간은 젓갈처럼 인문학에 절여졌던 사람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논리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저를 그렇게 다루시는 거지요. 은혜를 주시되 각자에게 '맞춤 은혜, 추적 은혜, 표적 은혜'를 주시는 탁월하고 놀라운 분!
가난한 집에서 철학과가 웬 말이냐, 무슨 사치에 등록금 낭비냐, 대학을 다니던 4년 내내 제 자신이 한심해서 자책했습니다. 혼자 4남매를 키우고 대학에 보내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학점을 유지해서 장학금을 받으려고 아등바등했습니다.
저는 언니들처럼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었습니다. 공부도 제일 못했고, 언니들처럼 좋은 직업을 가질 자신도, 엄두도 내질 못했던 것이 지금 오히려 이렇게 하나님의 픽업을 받는 요인이 되었으니 은혜가 아니고 뭔가요!
하나님은 약한 것을 들어 쓰시는 분이니까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