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3
어제 '미래 생명'을 보듬는 청소년 인성교육교재 집필팀 워크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 방문 앞에 자생한방병원에서 보내 온 추석선물, 녹용이 놓여있었습니다.
저는 10년 째 자생한방병원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씨알재단과 함께 제게는 생명의 은인입니다. 제가 이렇게 사람 구실을 하고, 작으나마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동력이 자생병원과 씨알재단에 있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동력이!
받았으니 나눠야 합니다. 그 사랑 나누기 위해 작은 겨자씨를 심는 마음으로 오늘도 저는 아침글을 씁니다. 어제 워크숍을 한 장소가 마침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 있는 '갈릴리 겨자나무교회'였습니다. 그 교회 김상기 담임 목사님이 저와 함께 인성교재 집필진 중 한 분입니다.
나리타 제 3공항 풍경은 엄숙하다 못해 침울하기조차 했습니다. 공항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 있어 사진 없이 말로만 하자면 안내 표지나 문구가 온통 검은색, 그것도 지나치게 굵게 쓰여있어 마치 규모가 큰 장례식장에 들어선 기분이었습니다. 6,661명의 장례를 치르러 온 우리들을 공항에서부터 제격으로 맞아줬다고 할까요?
공항과 연결되어 있는 열차를 타고 우리가 일차적으로 가야할 곳은 케이세이 우에노역, 나중에 안 거였지만 우리나라의 서울역이나 청량리 역만큼 번잡한 역인데, 여기서 환승을 하여 관동대학살 추모 장소가 있는 야히로 역으로 가야 합니다.
케이세이 우에노 역으로 가기 위해 공항 지하철로 들어섬
7시 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주에서 인천공항까지 밤을 꼬박 새웠을 씨알재단 이창희 사무국장 부부, 재단 김원호 이사장님과 저, 양혜경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전 SBS 방송사 김양호 피디, 시민단체 참여연대 백미정 씨 등 7명이 함께 움직입니다.
곤봉 모양의 긴 장대를 들고 단 위에 올라서 보초를 서고 있는 공항 내 치안 담당 경찰관은 일본 강점기 '순사'를 연상케 해 약간 불쾌했습니다. 단 위에 올라서 있는 모습과 제복, 특히 모자가 한 세기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주었는데 열차 안에서 마주한 안내원의 복장은 그보다 더 시대를 거꾸로 돌려놓은 모습이었습니다.
나리타 제 3 공항에서 제 2공항으로 가는 통로에서 근무 중인 경찰관. 우리 말 안내가 보인다.
공항이 그 나라의 첫 인상이라 할 때, 저의 일본 방문 첫 인상은 어둡고 다소 고압적이며 경직과 질서 정연(이 지나쳐 숨이 막힐 것 같은 열차 내부), 제복에서 오는 빛 바램 등이었는데, 이 부정적 느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내 취향, 살고 싶은 나라 1위'의 급호감으로 바뀌게 됩니다.^^
제가 일본을 처음 가본 아주 촌스러운 사람인 이유는, 한국과 일본은 2시간 30분 밖에 안 걸리는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호주와 일본은 거의 10시간 거리입니다. 호주에 살면서 일본을 간다는 것은, 한국에 살면서 호주를 가는 것만큼 큰 맘을 잡아야 하는 거지요.
26세에 결혼해서 거의 바로 호주로 이민을 간 저로서는, 그리고 그 당시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을 유행처럼 다니던 때가 아니었으니, 제게 일본은 60년 만에 처음 가보는 멀고도 먼 나라였던 거지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