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2
가을맞이 첫걸음이 쾌적하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힐링'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데 어젯밤 제 상태는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을만큼 힐링, 그 자체였습니다.
5년을 함께하고 있는 독자의 초대로, 작지만 파워풀한 음악회를 갔던 거지요. 생수를 퍼붓는 듯한 강력한 연주, 참 공교로운 것은 이 음악인 모임도 8명이라는 것. 제게 8이란 숫자는 생명과 사랑의 상징수가 되어 갑니다.
관동대학살 추모팀도 8명, 청소년 인성교육교재 개발팀도 8명, 스위스 조력사 동행팀도 8명.
클래식계의 어벤저스, 8인의 젊은 음악인 모임, 앙상블 파체
집으로 돌아오던 늦은 밤, 서초동 밤거리는 상쾌했기에 관동대학살 추모 기간 동안 무덥게 끈적이던 동경의 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학살당한 6,661명 조선인들의 100년 만의 첫 추모제를 위한 출발은 2일 새벽 3시, 우리가 타야할 비행기는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오전 7시 5분 발 제주항공.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대 입구 정류장, 새벽 4시 20분 첫 공항리무진도, 비슷한 시간대의 첫 지하철도 7시 5분 비행기를 타기에는 무소용이었죠.
택시를 타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던 차에, 인천공항 장기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가자며, 사당동에 사시는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이 새벽 3시에 신림동 제 집 앞으로 저를 데리러 오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새벽 2시에 스마트폰 알람을 맞춰 놓고는 혹시 못 들으면 어쩌나, 알람이 안 울리면 어쩌나 괜시리 불안하여(날마다 새벽 5시에 나를 깨우는 알람이 왜 갑자기 고장날까만) 그대로 깨어 지새다, 2시 50분에 준비를 마치고 집 앞에서 이사장님 차를 기다렸습니다.
그 이른 시간에 큰 길도 아니고 주택가 골목에 노란등을 켠 빈 택시가 자주 오가는 것이 좀 놀라웠습니다. 누군가 예약을 했다는 뜻이니, 우리처럼 공항을 가는 것일까. 여행가방을 보고는 콜한 사람인 줄 알고 내 앞에 서는 택시가 있는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사장님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3시 30분이 가깝도록 오시지 않으니 슬슬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약속보다 늦는 상대에게 독촉이나 확인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 약속한 3시를 30분이 넘도록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건데 그날은 비행기를 타야하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화를 드려보았습니다.
나중에 말씀하시길, 간밤 10시 무렵, 3시가 아니라 3시30분에 픽업하겠다고 문자를 써 놓고는 전송버튼을 누르지 않으셨다고. 그랬으니 이사장님은 이사장님대로 "신아연이 왜 날더러 언제 오냐고 전화를 했지? 내가 약속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닌데..."하고 의아해하셨다고.
실은 강화도에서 또 한 명을 픽업하기로 했다며 새벽 3시에 출발하자고 하셨던 건데, 사당에서 신림, 신림에서 강화, 강화에서 인천공항까지 무려 3시간을 운전하신다는 게 연세 많은 분에게 너무 무리가 아닐까, 더구나 전날 눈도 못 붙인 상태일텐데...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강화도에서 오는 사람을 강화도까지 데리러 가질 않고 김포 인근에서 만나는 걸로 변경, 30분을 늦추게 된 거라고.
"이 오이를 좀 먹어 봐. 농사지은 거야."
이사장님이 그 이른 시간에 반찬통에 오이를 가지런히 썰어 담아 오셨던 것이죠. 김이사장님은 대형 변리사 사무실 대표 은퇴 후 4년 전부터 양평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개인 농사로는 규모가 꽤 큰 편이지요. 변리사에서 농부로!
오이는 달고 신선했습니다. 새벽 공복에다 오이의 찬 성질로 인해 설사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여러 조각 아삭아삭 씹었습니다. 긴장하거나 환경이 바뀌면 과민성대장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걱정했던 건데, 가만히 돌아보면 신앙을 가진 이후 이 증상이 없어졌습니다. 밤에 잠을 잘 자는 것도, 불안한 꿈을 꾸지 않는 것도 신앙생활이 가져다 준 선물이고요.
오늘은 글을 좀 일찍 보내고, 아침 일찍 청소년 인성교육교재 개발팀 워크숍을 갑니다. 장장 10시간 이상의 강행군이 될 것입니다.
관동대학살 추모팀이 과거의 생명을 보듬는 도리이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청소년 인성교육교재 개발은 미래 생명의 길잡이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조력사 입법화 반대를 위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의 제 몸짓은 현재 생명의 존중을 위해서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 생명을 보듬는 세 가지 일에 다 관여하고 있는 제가 마치 생명의 수호신이라도 된 것 같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