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1
오늘부터 지난 2~7일, 5박6일 간의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녀온 후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스위스 조력사 강연을 두 차례 했고, 200자 원고지 100매 분량의 원고를 꾸렸고, 제가 글을 쓰는 THE PR 포럼에 참석했고, 두 차례 글수업을 했습니다. 저로서는 일본 일정에 이은 매우 벅찬 열흘이었습니다.
제가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의 기록 담당자라 '인간 녹음기'처럼 이번 여정도 깨알털듯 죄다 글로 써 놓아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아침글을 쓰는 시간, '영혼의 맛집' 에서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만나는 분마다 제게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달라고 하시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 누이에게도 매부에게도 한꺼번에 들려드릴 수 있어서 좋은 거지요.^^
끝까지 함께한 일행 중에는 제가 제일 나이가 적었음에도 제가 제일 건강 회복이 더뎠습니다. 가장 저질체력이었던 거지요. 연세가 가장 많았던 75세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의 일상 회복이 가장 빨랐고요.^^
김이사장님은 "신아연, 뭐 했다고 그렇게 힘들어 하지?" 하시면서 지난 주말에는 급기야 제게 고기를 사주셨지요. 그랬는데 이사장께 신세 진 다른 사람이 계산을 했습니다. ㅎㅎ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그저 내 몸뚱이 하나 책임진 것 외엔. 그리고 그렇게 했지요. 적어도 동행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로.
사람들은 세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세 모습, 세 부류. 첫째, 어떻게든 내 짐은 내가 지고 가는 사람, 둘째, 무거운 내 짐을 남의 어깨에 올려놓는 사람, 세째, 남의 짐까지 떠안고 가는 사람.
이번 일본 행사에서 저는 첫번 째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두번 째 사람, 세번 째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번 째 사람은 두번 째 사람의 몫까지 감당하느라 결국 탈진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저는 두번 째 사람의 짐을 나눠질래야 질 수가 없었던 거고요. 내 짐만으로도 벅찼으니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지요. 그게 체력이든, '심력'이든.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행사는 몸의 힘이 관건이었지만, 2년 전 스위스 조력사 동행은 마음의 힘을 끌어모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역시 씨알재단 사업인 '청소년인성교육 교재개발'은 영적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다른 말로 영, 혼, 육이 전부 가동되어야 합니다.
관동대학살이 아닌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상기시킨 동경 지하철 게시물
공교롭게도 관동대학살 추모제에 함께 한 사람도 8명, 스위스 조력사에 동행한 사람도 8명, 인성교육 교재개발팀도 8명입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8인조'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력사 동행자 8명 중 조력자살 반대는 저혼자 하고 있지만.
'생소팔' 가운데 인성교육 교재개발팀도 그렇지만, 관동대학살 추모팀의 행보도 이제 시작입니다. 100년 만에 희생자들께 제사 지내드린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씨알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생소팔을 응원해 주시고 함께해 주십시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Uvx9_4vxHpg?si=TG6MyykpKmrlhxh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