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5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어제 교회 밥 당번이라 뒷정리까지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불쑥 부고 카톡이 떴습니다.
65세 지인의 본인상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저장된 전화번호를 찾아 자녀들이 보내온 것이죠. 좀 일찍 가신 걸 보면 이혼 후 혼자 살던 분이라 삶이 더 고단하셨을까 싶어집니다. 혼자 사는 제 전남편 생각도 났습니다.
서서히 저와 비슷한 연배의 상을 맞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발걸음이 가까이, 점차 가까이 다가옵니다. 저와 함께 글을 쓰시던 100세 칼럼니스트가 얼마 전 돌아가셨을 때와는 또다른 실감으로.
내 인생은 얼마나 남았을까... 짐작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얼마가 남았건 지난 날의 과오를 할 수 있는 데까지 회복하고, 주변에 촛불의 온기나마 되는 것이 저의 여생 일입니다. 따듯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
인생에서 노년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잘못 살아온 젊은 날을 돌아보고 회한과 후회로 점철된 마음을 돌이켜 새로이 살 수 있는 패자부활전이 주어지기 때문이지요.
제게 그 기회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셨습니다. 예수님 아니면 통째 잘못된 제 인생이 어디서 '그래도 괜찮아, 다 괜찮아. 네 잘못만은 아니야. 아니, 네 잘못이어도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네게는 아직 소망이 있어. 영원한 소망이 있어.'라고 위안과 용서와 고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침 인사가 너무 길었네요. 9월 2~7일, 5박 6일간의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길, 갈 길이 먼데 말이죠. 이러다 석달 열흘이 걸리게 생겼습니다. ㅎㅎ
어디까지 했지요? 아, 나리타 공항에서 40~50분간 전철을 타고 동경의 중심역 중 하나인 우에노역에서 허겁지겁 요기를 한 후 추모장소가 있는 야히로역으로 가야 하는 거지요?
일행은 또 바삐 움직입니다. 각자 행장은 옷가방 하나로 단촐하지만, 행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나눠지고, 같이 들고 하느라 분주히 챙길 것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어를 하실 줄 아는 김원호 씨알재단 이사장님이 앞장을 서서 일행을 인솔하셨지요. 김이사장님은 야히로 행 열차 시각에 맞추려면 그만 먹고 이제 일어나야 한다며, 케이세이 우에노역 인근 식당에서 후식으로 제공되는 아이스크림도 드시지 않으셨지요. 평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는 분이.^^
식당 주인에게 야히로역 가는 방법을 물으니 아예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더라며 참 친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정신없이 밥을 먹는 동안 이사장님은 우리에 앞서 채비를 하셨던 것이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편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누군가를 그저 따라가는 것, 내 길을 맡기는 것에서 오는 천진한 평안함!
일행을 인솔하는 김원호 씨알재단 이사장
행사에 쓸 물품들을 걸머지고 끌고. (앞)행동대원 김윤수, (뒤) 김양호 피디
김이사장과 목적지를 확인하는 이창희 씨알재단 사무국장과 옆에 앉은 참여연대 백미정씨
드디어 야히로역에, 그리고 숙소에. 이 숙소에 대해서도 할 말이 한 보따리. 숙소의 이름은 'nice'지만 거의 나이스하지 않았던. ㅎㅎ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고생들로 인해 더 보람이 느껴지고 더 많은 이야기거리가 생기는 법이죠.
내일 계속하지요.
야히로역에서 길을 건너 숙소가는 길. 마을버스가 예쁘다
일행이 묵었던 야히로 나이스 호스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