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6
"나이스 호스텔이 나이스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일본은 하늘만 컬러고요, 거리와 사람은 대체로 흑백입니다. 튀면 안 되는 문화가...ㅎ"
"일본에 대해 급호감으로 바뀐 건 왜죠?"
"어디 한 군데 여행할 상황이 못 되는 저로서는 마치 일본을 함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관동대학살 현장방문기를 연재한 이후 독자들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네요. 일본에 대해 잘 아시기 때문에 제 글을 더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일본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 할까요? 독자 중에는 최소 5번, 최고 100번까지 다녀오셨다고 하네요. 여행이로든, 일로든 일본은 정말 우리와 가까운 나라임을 실감합니다.
숙소가 나이스하지 않았던 이유 요? 바비인형집이나 레고블록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네, 너무 좁았던 거죠. 여북하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뒤를 닦으려고 하니 팔이 벽에 닿아 제대로 돌릴 수가 없었다는 소리가 나왔을까요?ㅎ 샤워 부스는 세워 놓은 관처럼 들어가면 몸이 꽉 끼었고요. 그나마 발가벗고 들어가니 들어갈 수 있었지요. ㅎㅎ 일행 중에 바비인형체형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ㅎㅎㅎ
이런 크기의 방에 두 명이 함께 잤습니다. 어떤 땐 세 명도. 밤에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자칫 서로 밟고 밟힐 지경이었죠. 나이스 호스텔이 나이스하지 않았던 이유죠.ㅜㅜ
씨알재단이 인색하고 물색없어서 그런 숙소를 잡았던 건 아닙니다. 추모제 준비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그랬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6,661명의 넋을 8명이 달래야 하는 상황을. 게다가 일본말도 서툴지요. 척척 이동시켜줄 차가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니 행사장 인근에 숙소를 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것도 일반 주택가에서, 선택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요.
일행 중 먼저 일본에 가셨던 분이 추모제 준비에만도 혼자 일이 벅찬데, 일행들 숙소까지 세밀히 살펴 구할 수 없었던 이유,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제는 한 독자로부터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1923 관동대학살 생존자의 증언>이란 제목의. 책을 쓰신 정종배 님이 아들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셨다고 하네요. 친절하게도 저자의 사인까지 받아 보내셨네요. 연락처도 함께 주셨고요. 참 감사합니다. 저자와는 오늘 인사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그물망처럼, 뜨개코처럼 관계의 지평이 넓혀져 갑니다. 제가 한 일은 그저 한 발을 들여놓은 것뿐인데 말이죠.
100년 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참상을 목격하고 동아·조선일보 등 자료에 실린 희생자 200여 명과 생존자 7,500여 명 중 200여 분의 실화와 증언 등이 이 다큐시집의 바탕이다. 100년 전 제노사이드 참상을 밝히지 못하는 신문 기사 행간에 배어 있는 통증에다 무슨 말을 더 보탤 수가 없어, 연구자들의 도움이 될까 싶어 신문 기사와 자료를 거의 그대로 옮겨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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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되는 인연 속에서 제가 가야할 길을 더듬습니다. 마치 사진을 현상할 때처럼 아무 형체도 없던 제 여생의 길이 언젠가부터 어렴풋하게 떠오르더니 점점 더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치 삼손이 죽기 전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사 하나님께 소원하듯이 저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죽기 전에 제가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소중한 생명 주셨지만 죄 많은 인생이기에 이대로 끝나면 너무나 무가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