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버지가 생겼다고 하니 축하한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어떤 분은 부럽다고 하십니다. 축하는 감사지만 부러움은 안타까움입니다. 왜 부러워합니까. 같은 아버지를 가졌는데. 가질 수 있는데.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야!"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육(肉)아버지'는 각자 달라도 '영(靈)아버지'는 같으니까요. 성경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 전도서 3장 11절
영아버지에 대한 갈망은 본능으로 주어졌습니다.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인 거죠.
본능이란 교육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기에 억누를 수 없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젖을 빠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신에 대한 생각을 본능적으로 합니다.
"신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신에 대한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말하는 거죠. 동물은 그런 생각 자체를 안하니까요.
다석 유영모 선생이 전도서 말씀,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를 아래와 같이 잘 푸셨습니다.
"사람이 머리를 하늘에 두고 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절대를 그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몸의 본능인 성욕이 있는 것이 이성(異性)이 있다는 증거이듯이, 내 마음에 절대(하나님)를 그리는 형이상학적 성욕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바라고 흠모하는 거룩한 존재, 이 존재를 나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자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영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그것은 본능이니까요.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대상은 같습니다.
저는 영아버지 밑에서 두 살을 채우고 이제 세 살이 됩니다. 세 살이면 말귀 알아들을 나이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으니, 이제 아버지 말씀을 더듬더듬 알아듣고 삶에 꼭꼭 배어들게 하여 버릇과 습관으로 체화시켜가야 합니다. 자녀는 그 아버지를 닮는 법이니 부지런히 영성을 훈련하여 아버지를 닮아가야 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닮아간다면 아버지께서 제 전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2024년,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만나 우리도 이제 아버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감격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도, 그 사람도 육아버지는 있되 없는 존재였습니다. 제 아버지는 감옥에 계셔서, 그 사람 아버지는 또다른 이유로 집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과 저는 그런 면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아버지가 있고 그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새해에는 제 전남편에게도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그 사람과 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도 아버지를 만났는데, 우리 세 사람은 다 만났는데 그 사람 혼자만 못 만나고 있잖아요. 너무 불쌍하잖아요. 육아버지야 어찌됐건 영아버지만 만나면 그때부턴 새 삶을 살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