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43

by 신아연


그저께 밤을 지새우고, 간밤엔 기괴한 꿈을 꾸고, 종아리의 무서운 근육 경련과 새벽녘 좍좍 쏟아지는 설사에.., 탈진한 채 지금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마음이 힘들어 육체가 고통을 대신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은 후 잘 먹고(원래도 잘 먹었지만) 특히 잘 자던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죠. 주님 주시는 평안이 풍선 속 바람처럼 영혼 가득히 채워져 있기 때문이죠.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장 27절



나이들수록 마음 힘든 걸 견디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바로 육체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무슨 일로 마음이 그렇게 힘드냐고요?



제가 속한 공동체 리더가 욕심에 눈이 멀어 죄를 지었습니다. 노욕이었습니다.



공동 작업을 하다보니 제가 그 사람의 죄를 추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처음엔 무조건 권위로 누르며 너 따위가 뭐냐는 식으로 무안주고, 그런 적 없다며 부인하다가 제가 끝까지 파고들자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그 사람의 추한 야욕을 벌거벗겨 놓고는, 동시에 그 사람의 수치심과 자괴감에 공감하는 슬픈 시간입니다.





1704418439164.jpg?type=w773




이제 공동체가 할 일은 그 사람을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직면을 했는지, 회개를 하는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있는지 그 사람의 현 상태를 알지 못한 채, 저 또한 함께 아파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은 그 사람이 죄를 지었지만 다른 날엔 내 죄가 될 수 있기에. 그럼에도 지금 당장 죄를 지은 그 사람을 그냥 둘 수는 없었기에... 그 모든 상황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제가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탐욕을 부리지 않았으리라 누가 장담할까요.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 내 속에도 있고, 지금 그 사람은 어떤 기회를 만나 그 죄성이 발현되었고 내 죄성은 아직 잠재되어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본성을 가진 인간인데 그 사람만 그런 죄를 지을 리가 없지요.



마치 누구나 암세포를 가지고 있다가 그 암세포가 어떤 계기를 만나 증식되어 누군가는 암환자가 되는 것처럼.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란 인류 공통 기도문을 주셨겠습니까.





20230903_102223.jpg?type=w773




시험에 들었고 악을 저지른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제 마음이 100년 전 관동대학살의 만행을 저지른 일본에까지 확장됩니다.



인간의 악한 속성이 마치 팝콘 튀기 듯 만개하여 광기, 집착, 실체 없는 분노로 일제히 폭발하면서 재일 조선인을 혐오스러운 바퀴벌레나 시궁창의 쥐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죠. 그러기에 그렇게도 잔혹하게 살육할 수 있었던 거지요.



나도 그 당시를 살았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조선사람들을 죽였을 거라는 100년 전 관동대학살을 돌아보는 일본 사람들의 말은 일면 양심의 고백일 수 있습니다. 만약 역사적 처지가 바뀌었다면 우리 역시 가혹한 가해국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니까요. 국가의 악도 개개인의 악과 아주 다른 뿌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기에 관동대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에 책임 추궁을 하여 당시의 잘못을 인정받고, 사과 받고 한풀이를 하자는 게 관동대학살을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려는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의 궁극 목표가 아닙니다.





20230902_131514.jpg?type=w773




지금와서 사과 받아 뭐할거냐는, 언제까지 뒤만 돌아볼 거냐는, 우리는 잘못한 게 없냐는, 누가 나라 뺏기라고 했냐는, 그러니 관동대학살을 자꾸 언급하는 자체가 창피한 일인 줄 알아야 한다는 저의 관동 동행기에 대한 일부 독자들의 부정적 시각은 씨알재단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오해입니다.





20230903_101352.jpg?type=w773




진정한 화해와 화합, 평화와 공존, 상생을 위해서는 진정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할 뿐, 사과받는 것, 나아가 보복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공동체 리더의 잘못이 폭로되어서 그것으로 다 됐다, 자업자득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쌤통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왜 제가 지금 심적 고통을 겪겠습니까. 오히려 쾌재를 불러야지요.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여 다시 앞으로 나가는 것, 비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단단해진 마음으로 공동작업을 새롭게 지속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지금 함께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temp_1704858291461.-1457498461.jpeg?type=w773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계 최대 규모, 도쿄 스타벅스